
♧ 봄 – 여국현
버스를 기다리다
깜박 졸았습니다
누가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습니다
텅 빈 정거장
나무의자 옆자리
동그란 햇살이 앉아
보얗게 웃습니다

♧ 딱 좋아! - 洪海里
“선생님, 요즘 술 좀 드세요?
그럼, 하지!
얼마나 하세요?
소주 두 병은 마실 수 있지만
한 병이면 딱 좋아!"
일흔하나가 묻고,
여든여섯이 답한다.
둘은 이미 주막에 들어서고 있었다.

♧ 불국佛國 - 한상호
어떤 산은 길게 누워
와불을 닮아가고
사성암 모난 바위 하나*
와불되어 집 지키네
나무 깎아 목불
삼베 개금 건칠불
새벽 동해 눈 비비며
연꽃 피워 올리는데
요양원 산보살 아직
묵언수행 중이신지
---
*구례 사성암 산신각 앞 바위.

♧ 눈이 지고 꽃이 피고 – 하은
다리 사이 누비던 음악이 튀어 나가려
카바레 문틈을 노리고 있다
수업은 언제나 처음이 중요하다는 사실
엉킨 사람을 짚신 삼듯 꼬아 엮는
인연의 수를 읽는다
긴요한 운명의 속도를 가늠하는 순간
무지개공이 지구보다 바르게 돈다
굽 높은 댄스화에게는
미끄러움보다 어둠이 함정이라는 것과
세상에 붙으려 각을 세웠대도
고양이 발톱으로는 가당찮은 일이라는 걸
그 사람 알았을까
꽃이 오는 것과 눈이 지는 것의 차이
무한 학습으로도 알아낼 수 없는 꿈의 성별
돌아서면 시드는 욕정이 늘 갸륵해
더운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마음에 닿지 않는 계절을 수순대로 지웠다
이가는 커피잔 감싸는 동안 나 모르게
천지에 꽃이 내리고 있었다.

♧ 부부 – 정형무
애기동백 보러 언덕길 오를 때였다. 바위솔 올린 돌담 새로 걸걸한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 소리보다 드셌다.
허리 끊어져라 밤새 그물질하다 와보니 서방이란 놈은 색시 끼고 술 퍼먹었냐는 거였다. 뜨끔했다. 겨울 바닷바람에 삭은 여자 얼굴과 몸피를 떠올려 보았다.
축대 아래 쭈그려 파자마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던 여린 남자의 눈도 핏발이 서 있었다.
통꽃으로 지지 않는 애기동백은 꽃잎을 함부로 놓아 버린다. 위미항 바닷바람은 드세기만 했다.
*월간 『우리詩』 4월호(통권 제45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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