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강연익 시집 '노을을 붙잡고'의 시(13)

by 김창집1 2026. 6. 2.

 

♧ 장엄한 축제

 

봄이 되면 온갖 만물이 소생하고

시작과 새로움 설레임과 화려함 속에

봄의 전령사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여름은 녹음으로 생명의 극지를 뽐내며

정겨운 매미 소리가 숲에 울려 퍼지고

열대야와 태풍이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은 생명의 결실을 함께 노래하고

억새와 갈대밭에서는 으악새 우는 소리와

단풍으로 이별을 연상시키는 계절이다

 

겨울 새하얀 설원의 풍경을 만끽하고

눈길에 낭만과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는

생명들의 수줍어하는 계절이다.

 

 

 

♧ 내일은 어떤 날일까?

 

세월을 품고 가는 구름 떼 아래로

오색 단풍 진 산이 황홀히 다가오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시간 속으로

저물어가는 노을에 오늘을 묻힌다

 

과거는 얻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고

미래는 약속을 거절한 채 믿을 수 없고

오늘은 잡고 있는데도 어느새 놓치고

어느 것 하나 얻을 수 없는 게 삶인 것을

 

이렇게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정성을 다해 설레는 마음으로

꿈을 간직하고 초대도 없이 맞이하는

내일은 어떤 날일까.

 

 

 

♧ 가을의 색깔

 

가을 바스락 밟히는 낙엽 속에

지나온 세월의 흔적들이 쌓여

잎이 지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저 산모퉁이에서 곱게 익어가는

낙엽의 사연들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왠지 낙엽 진 길에서 고독을 씹는다

 

어느새 다들 떠나버린 들판에

당만의 추억은 이별만 남긴 채

황혼길에서 정처 없이 헤매고 있다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 가을에 내 인생의 마지막 잎새는

어떤 색깔로 떠나려는가?

 

 

 

♧ 한심한 세상

 

  그리도 기다려지던 비가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어느 6월 하순 물 폭탄을 맞고 퍼붓는 장맛비에

  산기슭이 무너져 내려 덮치고 강둑조차 무너져

  홍수가 발생했으니 이 일을 어찌하라

 

  산사태로 잠자던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고 멀쩡하던 지하 도로에 차량이 물에 잠겨 수십 명이 희생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인재 누구 하나 내 잘못이었다고 나서지 않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네

 

  희생당한 유가족들이 한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진실을 사실대로 조사하고 책임을 묻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누가 정부를 위해 충성을 하고 애국을 하겠는가?

 

 

 

♧ 꽃으로 피어나리

 

꿈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은 생을 움켜쥐고 지나온 세월에 손을 펴고

내려놓으면 가슴 한구석도 비어 간다

 

저녁이면 곱게 물들이는 노을 속으로 나를 감추고

하루의 종말을 생각하며 초라하게 늙어가는 것에서

젊음의 흔적들이 꽃길 되어 나를 위로해 준다

 

닳아 없어져도 향기로 남아 내 욕심도 비우고

나를 다듬으며 외롭지 않게 잔잔한 매력을 느끼며

언제든지 꽃으로 피어나고 싶다.

 

 

              *강연익 세 번째 시집 『노을을 붙잡고』 (그림과책,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