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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6. 6. 8.

 

♧ 편백나무 아래서 - 박동남

 

편백나무 숲속

나무 사이로 내리는 햇살

이는 바람에

빛과 그림자가 통나무집 커튼에 드리워 바람에 술렁인다

새들이 쉼을 얻는 낮 시간

향기로운 치유의 밀실에 든다

나무를 휘감고 노래하는 초록에

모든 것이 유순해진다

비가 오는 날은

난타와 탭 댄스로

벌레와 짐승들을 정결하게 씻어 준다

눈이 즐겁다

감동이 가슴에 채워진다

누구나 망설이지 말고 오세요

새 힘이 솟아나는 이곳으로

 

 

 

♧ 붉은 낙인 – 목경희

 

두꺼운 암막 사이 새어든 울음

서로의 눈짓마저 가로막는다

가닿지 못해 고립된 섬들

숨소리조차 죽여야 했던 기다림 끝에

 

짓이겨진 감정의 물줄기

소리 없이 계곡을 지난다

빛과 어둠, 그 아득하고 위태로운 경계 위에서

 

진저리나던 미움의 끝단에

그리움의 선홍 피가 맺히고

동백꽃 고개 꺾이듯, 툭 떨어진다

 

 

 

♧ 입동과 소설 사이 - 남대희

 

햇쌀 하기 엔 너무 부드러웠고

해살 해보고 오므렸다

 

튕겨 나오는 것들은 모두 끝이 있어

스미지 못하고

 

카페1098

곁에 느티나무 붉게 흔들렸고

전봇대가 창문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라는 오후에

하늘이 머리를 꾹 눌러 주저앉히고

바람이 나뭇잎을 따라다니며 웅성거리는 때였고

 

창공이 창공 너머까지 통과하는

압화 같은 구름 조각 사이

새의 머리가 화살같이 박히는

그런 날들 걸어 두는,

 

 

♧ 별못 – 나병춘

 

누가

저 텅 빈 허공에

금못 은못을 챙, 챙, 챙

박아 두었을까

 

까만 하늘

무너지지 말라고

지금도 챙, 채앵, 못 박는 소리

나의 외로운 귓가에 쏟아지나니

 

별자리 못들이 흘린

핏방울 땀방울 눈물방울

적막한 호수에 쏟아져서

수련 왜개연 청개구리로 뛰어노나니

 

누가

저 가난하고 연푸른 못에

금못 은못을 박아 두었을까

노랗고 하얀 별들의 눈동자로

 

 

♧ 스트레스 – 김정옥

 

머릿속에서 콩 타작하는 소리가 난다

귀에서 벌레들까지 합창하며 야단법석이다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 봐도 물러나지 않는다

악다구니에 참지 못하겠다고 심장이 맹렬하게 막아선다

투석전으로 열불이 끓는다

 

가라고 등 떠밀어도 갈 생각하지 않던 밤이

슬며시 뒷걸음질 치고

 

박새가 창문을 두드리며

수양 매화 향기로운 뜰에서 부른다

 

 

♧ 난초 – 김동헌

 

군자가 글을 읽는다

맹자 고자장상 11장

仁人心也章(인지심야장)에 나오는

 

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矣(학문지도무타구기방심이기이)

나는 20대에 안진경체로 쓴 적이 있다

학문의 도를 고민하며 표구해서

거실에 걸어 두었다

 

몇 해 전 최화백이 전해 준 군자란

학문지도를 깨우쳤다

만 오 년 만에 꽃을 피웠다

 

 

♧ 가난은 어디에 필요한가 – 김미외

 

거침없이 새날이 왔는데

떠오르는 해 속에

가난이 뼈마디를 빛살로 발라낸다

웅크리던 구석을 나와 돌아온 샛길이

허허벌판에 눕는다

가난은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는다

절벽에 매달린 돌덩이로 굴러떨어져

희망으로 부푸는 근육질을 납작하게 깨부순다

내 안의 다정한 종소리와 오기는 녹슬어 가고

생의 명암은 더욱 검은빛으로 짙어진다

가난은 왜 나를 사랑하는가

어디에 쓰겠다고 나를 이렇게 꽉 끌어안나

세찬 바람에도 부리가 뽑히면 안 된다는

하찮지 않은 위로를 알려 주기 위함인가

삶이란 끝까지 가봐도 영롱한 고통임을

서늘한 명랑임을 알려 주기 위함인가

나를 사랑한 가난이 있었다는

어금니 깨물던 이야기를

오래된 농담으로 웃는 그 날 향해

부서진 햇살 물고

슬픔의 너른 그늘을 걷는다

 

 

                                      *시 : 월간 『우리詩』 5월호(통권 제455호)에서

                                                     *사진 : 아이리스 자포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