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3년 통권 14호의 시(2)

김창집1 2023. 12. 30. 00:12

 

 

이런 날 김정수

 

 

이런 날은

바다에 가고 싶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배가 부르도록 마시고 싶다

이런 날은 바다에 가서

배가 꺼지도록 숨을 내쉬고 올 것이다

오다가 창 넓은 점빵이라도 보이거든

들어가 오래된 액자라도 보고 올 일이다

메모지가 있거든

당신이 그리워 왔다 갑니다 하고 써서

붙여놓고 올 일이다

 

 

 

 

강나루此岸에서 - 김종호

 

 

강나루에 무연히 섰노라니

하루를 무겁게 굴러온 태양

불타는 강물로 잦아들 때

줄곧 따라온 바람일가, 툭 친다.

 

*당신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을 건너려고 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룻배는 언제 도착합니까?

-그야 강주인의 마음이겠죠.

*당신이 줄곧 걸어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후회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그때마다 사정없이 들이받는

고약한 염소 한 마리 몰고 왔지요.

*당신이 애타게 찾아 헤매던 행복은 무엇입니까?

-, 그 또한 후회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입니다.

*왜 그런가요?

-행복은 그 모든 것들의 화학작용이지요.

바다의 눈물진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주의 은은한 무지갯빛이 그것입니다.

*당신은 사랑의 실체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회초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용서의 눈물이니까요.

아버지는 먼저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십니다.

*그러면 어머니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식을 두른 절대의 치마폭이지요.

사탄의 질투도 뚫지 못하는 엄마는 슬픈 운명이지요.

*그러면 이성의 사랑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영영 닿지 않는 그리움입니다.

별빛은 바라볼 때마다 반짝이지요.

*그러면 완전한 사랑은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리움이 끝닿는 곳에 있습니다.

나를 소진하고 나서 가장 순수한 꽃이 피지요.

*왜 세상에는 완전한 사랑이 없습니까?

-그것은 탐욕 때문이지요.

탐욕은 거울의 뒷면을 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죄를 반복하여 짓습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가요?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니까요.

*그러면 사탄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최후의 심판대에서 증인이 필요하지요.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증인이지요.

*사탄의 유혹은 무엇입니까?

-의심과 탐욕의 모호한 안개를 뿜어내지요.

*당신은 사탄의 안개를 아십니까?

-그것은 개념이 삭제된 환상이지요.

탐욕, 권력, 쾌락으로 조제되었으니까요.

*당신의 약점을 살짝 말해주시겠습니까?

-그것은 핑계입니다.

본의 아니었다는, 취해서 필름이 끊겼다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시를 씁니까?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사는 겁니다.

등불을 밝혀가는 자의 노래지요.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저 타이타닉호의 악사들의 연주입니다.

물에 잠기는 순간까지 연주하는 그것입니다.

*, 저기 배가 오는군요. 잘 가세요.

-잘 있어요. 한 많은 세상

미련도 없다 했는데 왜 눈물이 나지요?

 

 

 

 

ᄃᆞᆯ각이 김서방 - 김충림

 

 

바리메오름 내려오면

웃한질이 동서로 내달리고

북녘 과납으로 내려가는 길

어름비 동녘에 염남은 가호

ᄃᆞᆯ각이 초가마을

 

43사태

초토화 작전

마을은 불타버리고

살아남은 주민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가친척 다 잃은 열 살 사내

홀로 애월 마을에 내려왔네

마음 고운 노인 만나 머슴살이로

소먹이고 밭일하고 집안일 도우며

여러 해 착하게 살았지

 

장년 시절

전도 밭갈이 대회가 있었네

당당히 1등 하여

황소 한 마리 부상으로 타서

삶의 밑천이 되었지

 

성가하여 자녀도 서넛 잘 키우고

대학까지 보낸 그를

ᄃᆞᆯ각이 김서방이라 부르는데

그의 호적을 만들 때 근본을 알 수 없어

애월 김씨로 등재하여 시조가 되었다네

제주 민요를 썩 잘 부르고

다정다감했던 그를 문득 그리워하네

 

 

 

 

혼자, 오래 산다는 것은 김태호

 

 

몇 날 며칠이 아니라

3, 6, 9년을

혼자 지내본 적 있니?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문득 소리가 그리워질 거야.

그것도 사람 소리가

그것도 한밤중 사방이 고요할 때

더욱 그리할 거야.

그럴 때 작은 라디오라도 있다면

누구의 소리라도 들리게끔 하고

다시 쓸쓸한 잠을 청하지.

혼자서 자면 잠도 외로워.

누군가 말했어.

스타벅스 사이렌의

그것을 보면 무섭다고.

혼자, 오래 산다는 것은

사이렌의 크고 시커먼 눈을

지겹도록 마주 보는 것과 같아.

 

 

 

 

메이즈랜드를 보고나서 추곡 문정수

 

 

인간의 삶은 미로의 인생

제주 삼다를 테마로 만든 랜드

바람미로, 돌미로, 여자미로

 

랜드는 연중 꽃 축제를 여는구나

3, 4월은 튤립, 5, 6월은 백일홍, 루피니스, 장미

6, 7월 수국, 7, 8월 넝쿨축제,

9월 꽃무릇, 구절초, 10월 메리골드

10, 11월 핑크뮬리, 국화, 122월 동백 축제

 

측백나무 미로는 피톤치드

현무암과 송이석 미로는 원적외선과 음이온

108번뇌의 미로를 다 돌면

해탈의 기쁨을 성취한다 하네

 

서울서 온 외손자와 작은딸 가족

코로나로 억눌린 가슴 제주의 해맑은 자연

부모들과 함께 하는 그 효도하는 마음

서울선 자주 볼 수 없는 뭉게구름이 그립다는구나.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  14(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