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1)
[머리글] 생물학자처럼 살아가는 시인의 시선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하면 나의 비밀을 고백하는 것처럼 마구 떨리고 가슴이 벅차요. 마치 오랫동안 혼자 즐기던 비밀의 화원을 소개하는 기분이니까요. 별처럼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쫓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엄마 품처럼 행복합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기에 어릴 때부터 자연과 함께 살았어요. 마당의 풀과 밭의 식물들과 바다의 미역과 전복, 소라와 함께 숨쉬었죠. 호기심도 많아서 오빠가 하는 것은 다 따라 했어요. 메뚜기 구워 먹기, 개구리 해부하기, 꿩 잡기, 온갖 꽃으로 소꿉놀이 하기, 귤 서리하기 등 수천 가지 추억이 떠오르네요. 파브르처럼, 석주명처럼, 다윈처럼 한 가지 일에 파고들었다면 지금쯤 생물학자가 되었을 거예요.
그러나 대신 신(神)은 저에게 아이들을 주었네요.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동심의 아이들을. 이십 년도 넘게 아이들에게 글쓰기와 독서논술을 가르치다 보니 저의 마음에선 단 한시도 동심이 떠나질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과 복잡한 수학 공식이나 화학 대신 스스럼없이 사마귀, 달팽이, 개미, 닭의장풀, 백일홍, 분꽃, 메밀꽃, 냉이꽃 등 무한한 자연의 세계를 관찰하며 글을 씁니다. (중간 생략)
제가 완성한 생태시편들은 2천 편이 훨씬 넘어요. 그것을 다 실으려면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 될 테니, 고르고 골라 몇십 편만 싣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생물학자처럼 살아가는 시인의 시선으로 생태시를 계속 쓸 거예요. 자연 보호를 위해 참여하고 실천하며 어린이들과 함께 문제점을 해결하는 파수꾼이 되려 합니다. 제주도 어디서든 저는 출몰할 거예요. 그때 마주 보며 웃어요. 우린 서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22년 겨울
양순진
♧ 야생 양하
할머니가
숲속에서
캐왔다는데
냄새가 야릇해요
무슨 요술
부렸는지
밥상에 올려진
향긋한 무침
제주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어온
자연식물이니
한번 먹어보렴
할머니 말씀에
눈 딱 감고
와삭 깨물었더니
신석기시대
숲속냄새
폴폴 나요
그대로 내 몸이
제주 곶자왈
되었어요
♧ 개망초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을 때는
과꽃 같더니
줄기에 한 잎 두 잎
돋아날 때는
버들잎 같다
일년봉 개망풀 넓은잎잔꽃풀 망국초 왜풀
별명도 많고
들판
길가
빈터 어디든
구름국화 흰구름국화 개망초 봄망초 주걱개망초
비슷한 친구들도 많아
헷갈리지만
일제강점기 때
전국으로 피어나
망할 亡 자 넣어 지었다는
개망초
왠지 슬프다
아직도 땅을 딱딱하게 만들어
논과 밭 거칠게 괴롭히는
망할, 꽃
♧ 자귀나무꽃 우산
장맛비 피하라고
우산살 펴줘요
아하 그래서
분홍 우산 아래
와글와글
개미
나비
자벌레
비 피하러 왔나 봐요
장마철엔
자귀나무표 분홍 우산이
최고예요
*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 (한그루. 2022. 값 12,000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