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동백문학회 간 '동백' 2023년 제3호의 시(1)

김창집1 2024. 1. 5. 00:01

 

 

         [초대시]

 

 

돌하르방 - 강덕환

 

 

한번쯤 목청껏 울어보길 했나

걸판지게 어깨춤 들썩여보길 했나

한반도의 남녘 끝 외진 섬 그늘

깍지 못 껴 두 손 비비지 않은 게

목 굳어 머리 조아리지 못한 게

천형으로 남아, 늘 그 자리

요렇게 꼼짝없이 박혀 사는 몸이지만

휘어지거나 비틀리진 않았다

 

몇 번이던가

품은 주먹으로 내리치고 싶었던 게

툭 불거진 눈망울로 쏘아보고 싶었던 게

아하, 그럴 때마다

속울음 타들어 가슴엔 송송 구멍이 패고

살점 도려내는 풍화로

검버섯 돋은 주름진 세월

 

그래서일까, 애초부터

가진 것 없었으니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어

따뜻한 이웃들이 있는 알동네에 산다

구석, 구석으로만 내몰리며

쫓기듯 살아가는 그들과 벗하여 산다

 

 

 

 

볕뉘 - 안상근

 

 

잠시 틈 사이에 머물던 볕뉘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이 되는 것처럼

 

나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 잠시 멈춘 때가 있었나

누구를 위해 잠시 뒤를 돌아본 때가 있었는가

 

잠시 그늘에 미치던 볕뉘

그 자리에 민들레가 피어 있는 것처럼

 

나에게 대답한다

이제야 내 발아래 밟힌 들꽃을 보았다오

미처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은 보지 못했다오

 

 

 

 

      [특집] 문학이 품은 제주의 맛

 

 

비양도 보말죽 김순국

 

 

한림 앞 비취빛 바다지기 비양도

바위틈에 올망졸망 분홍빛 원뿔 고동

구수한 바다 감칠맛 깊이만큼 엄지 척!

 

녹아내린 조간대가 큰 파도에 울어댈 때

바위 젖 빨아대며 틈새에서 맘 졸였지

씁쓰름 보말 똥 맛은 세상 오미 다 삼킨 맛.

 

 

 

 

자리젓 김영란

 

 

ᄎᆞᆯ레여 반찬이여

ᄄᆞ로 준비 헐 건 뭐우꽈

 

우영팟 어랑어랑 부루에 유썹 ᄐᆞᆮ아당

부루 ᄒᆞᆫ 장 유썹 ᄒᆞᆫ 장 그 웃디 ᄑᆞᆺ밥 ᄒᆞᆫ 적 또 그 웃디 쿠싱ᄒᆞᆫ 자리젓,

ᄒᆞᆫ 굴레 ᄀᆞ득여지게 움막움막 먹어 봅서 입매 ᄈᆞ뜬 사름덜도

밥 ᄒᆞᆫ 사발 문짝이우다만 그 내우살 싫어ᄒᆞ는 사름덜도 잇이난

푸달푸달 괴운 쉰다리로 꼭 입 보세붑서

거 ᄒᆞᆫ 사발이문 자리내도 엇어지고 속도 펜안헙니다게

 

겐디 양,

쿠싱ᄒᆞᆫ 그 맛 알아사

제주사름 아니카마씸

 

 

 

 

봄소풍 김정자

    -명도암에서

 

 

지친 삶을 치유하는 4

나 시인의 텃밭은

사랑으로 키운 나물들이

쉴 틈 없는 봄 햇살 받으며

웃고 있었다

 

익숙한 농부처럼 이랑 사이사이

채소를 가꾸는 나 시인 부부는

이미 오래된 우산 속 연인이었지

 

갓 따온 나물 비빔밥은

단숨에 삼켜버린 사랑이었다

몸에 잠겨 있던 묵은 체증이 사라지자

햇살 담은 흙냄새가

꽃향기에 옮겨와

졸졸 따라다닌다

 

 

              *동백문학회 간 冬柏(이천이십삼년 세 번째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