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김영순 시집 '밥먹고 더 울기로 했다'의 시(10)
김창집1
2024. 1. 6. 00:01
♧ 다초점
물떼새의 군무는 누가 지휘하는지
이탈자 한 명도 없는 완벽한 공연 앞에
안경을 잃어버렸다
꼈다 뺐다 하다가
세상은 다짜고짜 다초점을 제안한다
저만치 산수유 생강나무 사이였나
발아래 봄까치꽃이 씨부렁대는 사이였나
원근법을 무시한 사랑이 무례하다
어디서든 단박에 들통 나는 풍경을 두고
가까이 두지는 못해
당겼다가 놓았다가
♧ 시차
꽃이 먼저 핀다고 고백하지 마세요
마당에 벚꽃잎이 분분분분 흩날려
쓸고 또 쓸어내려도 꼼짝없이 당하던 봄
겹겹의 그 봄에 물세례 퍼부으면
천지간 말간 하루가 어제처럼 다가와
꽃 지면 나도 없을 거라고
고백하지 마세요
♧ 공갈
하늘도 심심하면 마른천둥 치고 가듯
치맛바람 출렁이는 서귀포 오일장터
뻥이요 큰소리 뻥뻥
가짜뉴스 판칩니다
밀반죽 내려지자 뭉게구름 날립니다
빗방울 튀겨내면 함박눈이 되구요
비행기 배꼽자리로
공갈별 뜨고 집니다
♧ 골무꽃
누구는 꽃이라 하고
누구는 풀이라는데
카메라 들이밀자 뒷말이 무성하네
귀한 건 마음에 담아야지
찍기만 하면 뭐하냐고
♧ 빗소리
촉촉촉 칭얼대던 아가를 재우다가
아버지 봄이네요, 끌끌끌 혀를 차다가
은밀히 사다리 타고
내려서는 투명인간
*김영순 시집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시인동네 시인선 215,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