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동백문학회 '동백' 제3호의 시(3)

김창집1 2024. 1. 20. 00:05

 

 

카멜리아 언덕에서 김정자

 

 

동백,

그 붉은 인고의 눈빛

가지마다 얼룩으로

검버섯 핀 이유

 

어머니를 닮아서

찬바람에 몰래 뚝 떨어져

가슴에 가만가만 묻는다

 

잔소리마저 그리워지는

동백 동산

 

 

 

 

영혼의 별 - 김항신

 

 

튀르키예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 위로

우주별 하나 보내고

여섯은 가네

 

내전만큼이나 할 말은

많아도 할 말을 잃게 하는

우주의 법칙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은

 

조물주는 를 키운다,

어머니의 강인력

 

 

 

 

가슴에 묻힌 말 서근숙

 

 

접은 손수건 위에 이름표

왼쪽 가슴에 달고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

종종 걸음으로 달려와

어머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는 말

현관 앞에 남았는데

 

뒤돌아보면 텅 빈 하늘

불어오는 쓸쓸한 바람

흰 머리칼만 외롭다

 

 

 

 

유월에 정미경

 

 

발각되지 않는 변색의 순간들이

큰 나무 가지 잎새 뒤에 숨어 있다

오선 악보 자리마다 다른 음이 울리듯

가지마다 다른 빛이 눈짓한다

 

이 자란다

 

무명의 하양이 연두로

어린 연두가 노랑으로

미지의 노랑이 분홍으로

여린 분홍이 붉은 빛으로

아픈 사랑의 붉음이 검게 농익은 슬픔으로

 

울음으로 약이 되는 검은 눈물, 오디

손톱만한 미물 하나 익어가는 내력이

부서지는 유월 햇살 아래

명징하다

 

 

 

 

유골 화장 진순효

 

 

파묘 전에

놀라지 마시라고 제를 올리며 걱정했다.

할머니 긴 단잠을 깨워도 되는 걸까

이 안식의 집에서 그만 나가시라고 해도 될까

 

관도 수의도 모두 흙이 되고

잘려나간 몇 도막 칡뿌리같은 유골 수습하며

알았다. 할머니는 여기 계시지 않다는 걸.

뼈에 엉킨 실밥이

할머니 입으셨던 고운 원삼을 증거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시간에 다 풍화되지 못한 서러움

뜨거운 불 속에 날려 보내시고

이제 처녀처럼 사뿐히 할아버지께 가시기를 빌며

부부실에 안치했다.

육십 년 청상과부 끝내고 흙 속에 혼자 누운 지 35

거의 백 년만에 신방을 차려 드리고

마지막 봉안제를 올리며 걱정하지 않았다.

 

모두 가벼워진 날이었다.

살다보면 사람들이 알게 될 거라고

할머니께 위안 받고 싶었던 내 마음도 같이 화장했다.

굳이 밝히겠다고, 부질없는 걸 품고 있는 관을 열어

 

 

                        *동백문학회 간 冬柏(2023년 세 번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