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산림문학' 2023 겨울호의 시(3)

김창집1 2024. 1. 29. 00:54

 

 

빙산 마을에서 김학순

    -에베레스트 가는 길

 

 

잡념 털고 두둥실

하늘 오르는

빙산마을

 

꿈결에 쨍그랑

하얀 창끝

파란 하늘 찔렀을까

 

하늘 벽 금 가는 소리

맑고 깊어

창문 열면

 

뾰족한

마을 수호신

문 앞에 다가선다

 

빙산 마을은

구름 타고 두둥실

하늘 오른다

 

 

 

 

경로敬老 식당 - 백인수

 

 

식사를 끝낸 남편이 아내에게

물을 가져다주고

네프킨을 손에 쥐어 줍니다

음식물이 흘린 자국도

깨끗이 훔칩니다

 

부인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듯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식사가 끝나자

식판을 들고 갑니다

부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따라갑니다

 

이것을 우리는

애틋한 사랑이라 합니까

숙명적 사랑이라 합니까

 

이곳은

애틋한 사랑과 숙명적 사랑이

함께 가는 세상입니다

 

 

 

 

목련의 겨울나기 엄선미

 

 

겨울이 싫었다

짙은 어둠이 싫었고

쓸쓸함이 싫었다

 

마지막 잎새를 떠나보내고

홀몸이 되었을 때부터

겨울을 나는 게 고역이었다

 

맨몸 위로 바람이 스칠 때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살갗이 터지고

가지가 흔들리는 몸부림에

눈조차 뜰 수가 없었다

 

계절은 점점 단단해졌다

일 년 동안 참았던 눈물이

꽃눈 속에 가득 고였다

 

그리고

삼월 어느 아침

눈빛 속살이 눈을 떴다

 

천연스럽게,

우산을 거꾸로 들고

 

 

 

 

마당을 쓸다 - 윤종대

 

 

산 중에 작은 마당을 쓰는 사람

흰 머리 위로 붉은 단풍이 환하다

붉은 단풍 위로 파란 하늘

점점이 새떼가 날아가고 있다

머릿속의 가물거리는 기억들처럼

쓸고 난 마당 비질 자국 위로 낙엽이 떨어진다

 

붉거나 노랗거나 푸르게 마른 잎이거나

제각각 다른 타임캡슐

열어보면 웃음이 울음이

기쁨이 슬픔이 쏟아지는 듯하다

 

 

 

 

나무들의 사랑 - 윤준경

 

 

5월 숲에서 보았네

나무들의 사랑을

 

사람들은 사랑에 목숨을 걸지만

나무들은 사랑 앞에 성자聖者가 되네

죽도록 사랑해라는 맹세도 없이

백년 천년 사랑을 하네

 

사람을 위해 씨를 뿌리는

순하고 향기로운 유전자

다른 나무와 손을 잡아도

새나 벌레를 품에 안아도

미움도 질투도 상처도 없네

 

5월의 숲을 바라보며

저녁쌀을 씻으면

저기 산허리 이팝나무

열댓 두리반 흰밥을 짓네

소유도 지배도 굴종도 모르는

나무,

 

사람의 사랑에 실패한 내가,

질투와 화염에 넘어진 내가,

다음 생애에 꼭 나무로 태어나야 할

이유라네

 

 

              *산림문학2023년 겨울호(통권5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