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문학' 2023년 제14호의 시(4)
♧ 구름처럼 물처럼 – 양태영
세월은 지나간다
구름처럼
바다로 흘러가는
물처럼
모든 것은 지나가야 한다
둑이 있으면 메워서
강이 있으면 채워서
흐르는 물처럼
구름이 흘러가는 곳
마음이 머무르는 곳
낭만이 있는 정원도
잠시 머물러 있는 세상
모래 위에 보이는
신기루의 성인 걸
바람 불면 아픈 가슴
돌아보니 무심한 세월
구름 보며 멈춰선 곳
바다 위에 돛단배
구름 가면 나도 가고
세월 가면 너도 간다
구름처럼
물처럼 흘러만 간다
♧ 과녁 – 이철수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직장 상사와 부하의 과녁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다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과녁이 향하는 풍경도 달라진다
달라지는 과녁 맞히기 위해선
올바른 화살을 날려야 한다
화살을 날릴 과녁을 찾는 건
숙제와 같은 삶의 문제이다
어디로 화살을 날릴지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가난하고 초라한 생일일지라도
질문 날릴 과녁이 있다면
당당하게 날아가 박힐 수 있다
낭만이 미소 짓고 손짓할지니
세상에 놓여 있는 나만의 과녁
제대로 맞히기 위해
질문을 찾고 또 찾아라
♧ 숲 – 임애월
곧은 나무
굽은 나무
꽃나무
가시나무
잘 생긴 바위
볼품없는 작은 돌
향기 짙은 풀꽃
배배 꼬인 기생덩굴까지
때로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어우러지며
그들이 만들어낸
평화로운 공존
♧ [동시] 가을 숲속의 과자 – 장승련
가을날
숲 속을 걸어가면
바스락바스락
과자 먹는 소리
숲속 나무들도
간식으로 과자를 먹나 보다
잎을 틔워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배고팠나 보다
잠시 쉬며 힘을 내어
겨울채비를 해야지
얼른 간식을 먹으렴.
♧ [시조] 돌문화공원 감나무 - 강상돈
억새도 쉬어가는 돌문화공원 입구에
따지 않는 풋감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저마다 똬리를 틀며 별자리도 만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면벽의 수행만큼
별빛으로 새긴 무늬 차마 그냥 둘 수 없어
길 잃은 별똥별 하나 은하계를 떠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날의 눈꽃처럼
굽어든 비탈길에 고요만이 내려앉고
쓸쓸한 이력서 한 장 가슴 가득 품고 있다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 2023년 통권 제14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