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빛이 나는 증거품' 제9호의 시(3)

김창집1 2024. 2. 1. 08:48

 

 

플루트와 그녀 - 김연미

 

 

플랫과 샵 사이 붉은 입술 내밀어요

하고 싶은 말들과 듣고 싶은 말들 사이

단단히 침묵한 당신

나를 받아줄래요

 

원초적 본능 같은 소리의 금빛 공간

손가락 행렬들로 비밀번호 풀어요

다장조 해류를 타고

당신에게 갈게요

 

오케스트라 협주곡 2악장을 넘어가요

반짝이는 음표들이 윤슬처럼 흐르면

생머리 그녀의 사랑

수초처럼 자라요

 

 

 

 

누룩꽃 김정숙

 

 

보리 서 말 밀 서 말 이웃하며 자랐네

 

맷돌에 돌돌 갈아 물 축여가며 섞었네

 

한 열흘 한 이불 덮고 뒤척이다 피었네

 

 

쉰다리 탁배기에 막걸리 청주 소주

 

줄줄이 낳고 낳아 잘 익히고 싶었네

 

오일장 한낮 좌판에 어슷 기대 피었네

 

 

 

 

맏이 신해정

 

 

부모덕

볼 생각은

진작에 지워야지

 

살림 밑천일지라도

엄마 언덕

필요해

 

팔 남매

맏이 어깨가

오늘따라 서글퍼

 

 

 

 

괜찮아 - 조희

 

 

물고구마에 대한 편견 남아 있을지 몰라

꿀고구마에 대한 편견 남아 있을지 몰라

편견의 편견을 위한 편견이 있을지 몰라

 

흙의 지문 찍으면 제주물이 들지 몰라

해남 댁 꿀고구마 제주물이 들지 몰라

괜찮아 괜찮아하면 정말 괜찮을지 몰라

 

 

 

 

파도였던 거 최은숙

 

 

유난히 맑은 날 바다 속이 환하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에 들어서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애틋한 파도 파도

 

한 발짝 두 발짝 수평선을 향해서

차르르 보석 뒹구는 그런 소리 그런 감촉

파도가 다독여주는 사랑들이 흐른다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빛이 나는 증거품통권 제9(한그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