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서안나 시집 '애월'의 시(3)

김창집1 2024. 2. 4. 01:47

*시집 '애월'의 바코드

 

 

바코드

 

 

살기 위해 굶어야 한다

 

애월 해변가 편의점

진열대에 술렁이는 파도로

물배 채운

아르바이트 청년

 

유리창에 뜬

창백한 바코드

졸린 밤을 해독한다

 

졸음에 자꾸 부딪치는

눈먼 나방 한 마리

 

 

 

 

밤의 애플민트

 

 

밤에 애플민트를 꺾었다

꺾은 자리가 떨렸다

실직한 이와 오랜만에 만난 술자리였다

 

김 모 시인이 말했다

여리고 푸른 것들은

쓰다듬어 손으로 향기를 맡는 거라고

 

술집 유리창에 발이 사라진

나와 일행이 허공에 떠 있었다

실직한 이의 얼굴이 창백했다

집단 학살터였던 박성내 다리* 앞이었다

 

얼굴이 붉어진 나를

실직한 자의 밤을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9 연대 군인 트럭에 실려와

집단 학살된 백 오십 명의 맨발을

 

이지러진 밤의 애플민트가

사과 향기로 어루만져 주는 밤

 

그 여리고 푸른 것들 앞에

내 무심한 폭력을 내려놓는다

다시는 풀과 꽃을 꺾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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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내 다리 : 43 사건 때 함덕국민학교에 모인 와흘, 함덕 등의 주민들 3백여 명 중, 자수하면 살려준다며 15십 명을 철사로 묶어 트럭에 태웠다. 9연대 3대대는 제주시 아라동 박성내 다리에서 이들 모두 집단 학살하고 시체는 불태웠다.

 

 

 

 

밤의 삼투압

 

 

밤에 먹는 라면은 진리입니다

라면을 먹으면 얼굴 부은 밤의 인간이 됩니다

 

휘파람을 불면 밤의 인간이 나옵니다

염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밤은

새로운 일터입니다

당신을 흡수합니다

삼투압입니다

가계부를 쓰지 않아도 밤은 쉬지 않습니다

 

알람 소리가 울리면

썩지 않는 샌드위치와 편의점을 만듭니다

대학과 대학을 합병합니다

사람과 기계를 합병합니다

 

샌드위치 소스를 만들던 소녀가 기계에 끼었습니다

기계가 소녀를 집어삼킵니다

1+1이 완성되었습니다

 

밤은 짭니다

밤의 시민들은 샌드위치를 또 사 먹습니다

샌드위치만 남습니다

 

밤은 전문가입니다

모든 질문은 차단됩니다

 

밤은 낭비되지 않습니다

 

 

*인민해방군 신장 기념비 부조에서

 

 

애월, 신장 위구르

 

 

고백은

고백할수록 더 참혹하다

 

우리는

우리의 추악함을 견뎌야 한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위구르족을

재교육 캠프 수용소에 가두었다

백만 명 이상 사망했다

 

수용소에서 탈출한 여성은 밤마다 집단 강간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카자흐족 여인은 수감된 여성들의 옷을 벗기고 손을 묶어

중국인 남성에게 넘겨 돈을 받았다고 말했다

 

4 · 3 때 제주 전역에선 군경과 서북청년단이

양민을 집단 학살했다

마을이 불탔고 사람들이 총살당하고 불태워졌다

선민공작으로 백기를 들고

산에서 투항한 이들은 주정공장 수용소에 갇혀 총살되거나

육지의 수용소를 이감되거나

배에 태워져 수장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애월, 우크라이나

 

 

선물을 받았다

젊은 나이에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사람

외국 공항 면세점에서 샀다는 향수

 

없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함께 산 향수

아이가 좋아했던 젖내가 난다

 

향수를 뿌리면

어미의 몸 냄새가 끌고 온

국경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부서진다

 

젖 불어

푸른 실핏줄 불거진

향수를 뿌리고 나는

국경처럼 가로로 울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 뉴스가

흰 자막으로 훌러나온다

 

 

             *서안나 시집 애월(시인수첩 시인선 079,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