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작가' 2023년 겨울호의 시(5)
♧ 그 여자의 정원 2 – 김영숙
신산 난산 온평리에 새의 정원 만든대요
지미봉 알오름 은월 대왕 대수산, 낭끼 후곡 유건에, 나시리 모구리 통오름, 독자봉 다 날리고 저어새 흑두루미 청머리오리 큰기러기 물수리 매 노랑부리저어새 이들 항로 지우고
백오십만 평 당신의 정원에 아스팔트 깐다네요
깡통새 나는 성산포 당신의 꿈이었나요
♧ 요트를 타다 - 오영호
낭만 짊어지고 대포항을 빠져나가자
따라온 해조음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요트는 너울의 등을 타고 시소 되어 춤추네
흔들리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냐만
앞으로 쏠리다가 뒤로 넘어질 때마다
갑판을 때리는 아우성 파래지는 내 얼굴
귀항의 키를 잡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서럽도록 아름다운 주상절리 앞에 닿자
투명한 푸른 바다 위로 웃음꽃이 만발하네
♧ 그녀의 종결어미 – 이애자
깰 만하면 마시고
깰 만하면 마시고
사위 눈치 며느리 눈치
오갈 데 없는 날엔
웬수도 그런 웬수가
푸대도 그런 푸대가
사네 마네 그쯤에서
침 탁 뱉고 돌아설 걸
징글징글 수십 년
각서고 나발이고
질겨도 그렇게 질긴
술푸대를 끼고 산다
♧ 반전(反轉) - 장영춘
꽃이 졌다고 밀어둔 연못 위로
새벽이슬 밝으며 피워 올린 어리연꽃
희망은 포기했을 때 반전은 시작됐다
♧ 휴면 계좌 – 조한일
1.
인터넷 뱅킹 하던 중에
계좌 서넛 찾았다
오랫동안 잠자는
다해야 2, 3만원
이자도 한 푼 안 붙는
숨겨진 동결 자산
2.
한 번 읽고 덮으면
엔간한 시집들도
잠꼬대도 못하는
휴면 시집 되는 판에
발간이 끝났다 해서
그리 잠이 오더냐
♧ 질경이 - 한희정
잡초로 살았어도 이름값은 하며 산다
분수껏 산다지만 희망은 늘 꿈틀거려,
대물린 간절함이야 함부로 밟지 마라
*제주작가회의 간 『제주작가』 2023년 겨울호(통권제8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