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향문학' 2023 하반기호의 시(4)
♧ 나무아미타불 - 김성주
화장장 굴뚝 뚫고
불새 날아간다
땅이 사라진다
해가 사라진다
달이 사라진다
별이 사라진다
♧ 해안동 1 - 김승범
이싱이 동동 섯동
광고모를, 성동산
잃어버린 밭고지에
씨앗 뿌려 놓으면
내년엔 봄 올까
푸성귀는 너울 너울
싱싱한 잎사귀에
새싹 나불나불 돋아
햇볕에 날개깃 춤춘다
망태 담아 어깨 메고
그리움을 찾는 동네
윗담 아랫담 노루목에
애틋한 가슴 품어주는
너른지 푸성귀 풍성하다
♧ 산행법회에 동행하며 – 김용길
산에서 부처님 법문을 듣습니다
몇 천만년 묵언수행의 산을 향해
때 묻은 마음 내려놓고
숲속 흔드는 바람소리 듣습니다
황소 같은 바위에 앉아
두 손 모두우고
먼 산봉우리에 걸리는 구름발
헤아려 봅니다
무량한 볕살을 받으며 흘러가는
구름들
살아온 생애의 기억을 띄워봅니다
버리고 버려도
채워지는 사념들
흘러가버리면 그만인 것을
바람처럼 흘려보내고
부처님 발끝 따라
산행길 돌아옵니다
♧ 동백꽃 사연 – 김철선
한라산
눈 내리고 서걱서걱 찬바람 꽃 속을
파고들면 동박새 가만 귀 기울고 꽃의
이야기 듣는다
‘이어도 가시며 석 달 열흘 온다던 임
행여 꽃바람은 아닌지
동지섣달
날밤 헤아리다 베갯머리 적셨다
오늘처럼 한라산에 눈 내리고
저 바다 울음 젖다 울렁이면
가슴에 안긴 바람 방울방울 붉은 자욱
옷깃에 아롱지고
“어머니, 아버지
어떤 날에 나를 나서” 팔자 노래하며
싸락눈 내리는 날
언덕배기 아홉 이랑 김을 매며
꽃노을 수평선 바라보다
세상 저편으로 눈비에 길 떠난 후
삼생(三生)의 인연으로 핏빛 그리움
꽃으로 피어났다’
♧ 탐진치․10 – 윤봉택
-반사흘(飯食訖)
내도 아닌
네도 아닌
처음
그날,
우리 모두는
세상의 빛이었다.
찰나조차 숨비소리 없는
항성의 빛으로
멀리 떨어진 게 아니야
네 안에 내가 있어
우리는 서로 볼 수가 없는 거야
보이는 것은, 흔들림 뿐
무명無明도
무명 아님도 아니닛고
늙음도
늙음 아니도 아닌, 그날에
토끼 뿔을 찾는
천체 망원경, 뚜껑 닫힌 줄도 몰라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2023년/ 하반기호(제21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