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빛이 나는 증거품'의 시조(3)
♧ 두 직 반 – 신해정
두 숟갈 반으로 밥 한 공기 끝내놓고
노래인 듯 “빨리빨리” 밥알들을 튕겨가며
두세 배 일한 대가가 머리맡에 쌓인 약들
죽마저도 못 넘기며 병마와 싸우시는
불면의 암 투병도 두 직 반에 끝났으면
아버지 아침 밥상이 줄어들지 않는다
♧ 기다림에 갇혔다 – 조희
차창을 때리는 설익은 눈 그런 날엔
그런 날엔 가슴 녹여줄 그 사람이 생각난다
토종닭 교래 일번지 좌회전을 깜빡이고
전깃줄을 꽉 메운 까마귀가 까맣다
유니폼 그대로 입고 잠시 쉬는 중인지
지금은 블레이크 타임 기다림에 갇혔다
♧ 시린맘 – 최은숙
구름이 많은 건 할 말이 많다는 건가?
하늘이 빨간 건 생채기가 터진 걸까?
저녁놀 그리운 단어들이 능선 위에 쌓이고
부모와 자식 사이 사랑과 원망 사이
얼굴 푹 숙이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는
아직도 올레길에는 코흘리개 아들이 있다
♧ 광해 적거지에서 – 강영미
가시로 울타리를 쳐도
가두지 못한 바다가 있네
손으로 두 눈을 가려도
푸르게 서는 하늘이 있네
무너져 나를 만나는
바람 성이
여기 있네
♧ 할머니의 믹스커피 – 고혜영
지나던 길 여행자에 건네주던 믹스커피
“고생 햄신 게, 커피 한 잔 해드릴까?”
할머니 따스한 인정이 내 마음에 물들어
아라동 금산공원 햇살 품은 담쟁이
곱게 드는 단풍엔 고운 삶 있었구나
붉으락 노르락하는 내 본색도 있었구나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빛이 나는 증거품』2023, 제9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