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동백문학회 문집 '동백'의 시(6)

김창집1 2024. 2. 16. 00:31

 

 

가을의 중력 - 강영은

 

 

날개에 실린 것이 하늘인 줄 모르고

잠자리는 날아가는 하늘을 두 날개에 묶는다

접혀진 날개가 펼쳐지면 가을이다

잠자리가 없어도 날개를 펴면 코스모스가 된다

혼돈 속에 익어온 햇살이 씨앗을 내밀면

코스모스가 완성된다

붕대를 모가지에 감고 걸어가는 사람이 뚝방길을 걸어가면

절반의 가을이 지난 것이다

모가지 끝에 피어나는 우주와 하나뿐인 세상과

당신과 보낸 가을 중에서

어떤 법칙이 코스모스의 뇌 안에서 작동한 것일까

얼룩진 손가락을 펴들고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신음하던 말을 쏟아낸다

손에 든 그것이 지구인 줄 모르고

눈에 든 그것이 우주인 줄 모르고 내가 지닌

언어는 코스모스를 운반한다

바람처럼, 햇살처럼,

바닥없는 것들이 바닥이 되는 계절이 가을이다

잠자리를 펼치면 당신과 나 사이가 투명해진다

그렇다 한들, 하늘을 붙들어 맨 날개에 대해 당신이 가진

코스모스 외에 어떤 비유가 필요한가

어떤 주석이 더 필요한가.

 

 

 

 

겨울, 사하촌寺下村 김미순

 

 

세상일 궁금한 별들이

마실을 나왔다

개들이 먼저 알고 짖었다

해탈을 꿈꾸는 장승이 눈 부릅뜬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곧은 나무들이 참선에 들었다

 

먼 동네의 잔기침 소리마저

살갑게 들리는 밤

어느 집 처마에서

가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고드름을

별 하나가 받아 안는다

 

적멸보궁

법당 안엔 빈 방석만 가지런하다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김순이

 

 

별이 지상에 내려왔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잃으면

꽃이 된다는 이야기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맑은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는 이야기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새벽마다 정안수 한 그릇 떠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면

천지신명이 그 마음 헤아린다는 걸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될 수 있다면 김정자

 

 

푸른 파도 쳐 오르는

저 바다 물마루에

그리움 묻어 놓고

 

억새꽃 손짓하는

산자락엘랑

못 다한 사랑 묻어 놓고

 

구름 떠도는

하늘 귀퉁이에

육신의 고통 묻어

 

한참 동안

나를 비우다가

나도 그렇게

지고

 

 

 

 

사봉길 걸으며 김항신

 

 

1.

 

가을이라 해도 좋겠다

어제는 겨울

봄이 이만치 왔다가 저만치서

우수수 날린다

 

성숙해 영글던 것들이

자기소임 다 한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바람 몇 대에

 

등대 바닷길도 예외가

아닌 듯 설레는 시간

저들도

착각 속에 사나 봐

아직은

이른 윤달

앞에

 

 

2.

 

별도길 반쯤 들어서니

갈바람이 땀 어루만진다

가면서 오면서 이곳만

봄이면서 가을인 듯

저들도

 

감 잡을 수 없는 실세에

당도한 듯 헤메인다

나처럼

 

 

                     *동백문학 3 冬柏이천이십삼년 세 번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