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의 시(4)

김창집1 2024. 2. 21. 00:27

 

 

신들의 텃밭

 

 

못 잊을 그리움 하나

수평선에 걸어두고

풍경소리 풀어헤친 전설의 향기는

대지의 영원한 사랑이에요

저 멀리 바다를 건너는

달그림자 좀 보세요

줘도 다 줘도 모자라서

밤낮없이 바다를 흔들고

해그므니소* 빗방울 돌아 앉히며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그리운 나라에서

사랑을 노래해요

땀꽃 소금꽃

송이송이 영그는

우리 꽃님 할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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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그므니소 : 해가 들지 않아 검게 보이는 바위 웅덩이

 

 

 

 

거친오름 뫼제비꽃

 

 

언 땅을 깨고 일어서기 위해

풀들은 저마다의 심장을 두드리고

손을 뻗는 뿌리의 힘으로 꽃피는 줄을

 

천 갈래 만 갈래의 서리 박힌 살은

시린 이를 부딪치는

만삭의 대지를 씻으며

빌레왓 곶자왈을 짐승처럼 기어 나온 순애 씨!

당신을 공비라 하던가요

 

1956년 교래 어디서 잡혀온 다섯 사내들 틈에서

스물두 살 앳된 처녀를 취조하던 한 경사,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 깊이에서

폭도와 경찰의 동거 살이 2년여

그 인연의 살핌도 갸륵하여이다

 

봄이 오는 산빛처럼

내 연모의 땅 거친오름 아래

사월 바람도 몸을 풀고

뫼제비 분홍 꽃잎으로

다문다문 내려서고 있다

 

 

 

 

꾸지뽕나무

 

 

여봐란 듯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온 몸에 두드러기 꿀렁꿀렁 일어나

물기 없는 이파리 푸석거려가며

샛노란 그리움을 뿌리 가득 칠해야 했다

 

몸에 좋다 약이 된다

너도나도 덤벼들기만 했다

하다하다 충 먹은 양 우글락부글락

못 생긴 열매 하나까지도

남아나지를 못하겠다

 

아서라,

선무당 사람 잡는 풍얼이

귀 쫑긋 눈 휘둥그레지는 칭원한 사람들아

내 뭔들 못 주랴

굳이면 어떻고 꾸지면 어떠냐

쿳가시낭 이름도 있으니

이 몸 아껴 무엇에 쓰리

어울렁더울렁 같이 사는 세상

 

까짓거,

비우면 채우고 채워지면 넘치는 법

모진 비바람도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버거운 길 위에서 우리

뜨겁고 서러운 시절들을 위해 기도하자

네 몸의 가시가 슬픔의 강물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도서출판 각 시선 051,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