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3)

김창집1 2024. 2. 23. 00:03

 

 

겨울 바다에서 - 성숙옥

 

 

차창에 펼쳐진 겨울 바다를 따라나선다

넓은 품에서 찰랑이는 물결

내 굽은 길을 가지런히 펴는 수평선에

지난 시간이 새 달력처럼 넘어간다

꽃이 피거나 지거나 뭉게구름이 뭉개거나 흩어지거나

한없이 다가서고 물러서는 바위들

바다, 지난여름의 열기가 멸치 떼처럼 팔딱거린다

어둡거나 밝아지는 모래 둔덕 사이

바닷물과 민물이 빚은 갈대의 얘기 사이

절벽에 꺾여도 지치지 않는 파도의 날개가 있다

그래 넘어져도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사는 일이구나

문득 함박눈이 물새 소리를 밟으며 사락사락 내려온다

나는 왜 저 작은 몸짓들에 한없이 차오르는가

모든 걸 다 받아 삼켜도

그 모습 그대로인 바다

방전된 마음이 푸르게 충전될 때까지 기대어 본다

 

 

 

 

와온 낙조 우정연

 

 

해안 도로변 단칸방

의 늙은 감나무

홍시, 올망졸망 낳아 부끄러워

 

초겨울 바다 물빛부터

낮달 두 볼까지

불그스름하니 주홍빛 화엄

 

 

 

 

샹들리에 링거 - 이수미

 

 

505호 중환자 격리실

발바닥까지 꽂아 놓은 주삿바늘에 짓눌려

비몽사몽 실눈을 떠보니

 

줄줄이 매달린 링거액 열두 개가

마치 샹들리에 전등처럼 반짝반짝

동그란 원을 그리며 나란히 내려다보네

 

똑똑 방울방울 떨어지는 투명한 액체 너머로

얼룩얼룩 눈물처럼 다가오는 친정 엄마

 

중환자실 문밖에서 날 애타게 부르는데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입만 벙긋벙긋

 

저승사자와 한판 겨루기 하는

막둥이 소식을

하늘 소풍 길에 전해 들었을까

 

엄마가 말없이 서서

의사 손끝을 지켜보고 계신다.

 

 

                          * 월간 우리2월호(통권42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