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4)

김창집1 2024. 2. 28. 00:17

 

 

갠지스 - 이중동

 

 

물의 영혼이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다

헐벗은 발이 강가를 향해 간다

관도 없는 몸뚱이가 몇 겹의 천에 쌓여

호명 없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간다

 

평생을 릭샤꾼으로 연명한 그의 고요가

남의 어깨를 빌려 호사를 부리며 간다

한 끼 목구멍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그의 맨발이 50루피 지전처럼 하얗다

 

이승의 업보를 씻으러 뚜벅뚜벅 강으로 간다

 

끓어오르던 한 덩이의 욕망이

흰 연기로 피어오른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장작더미에 묻는다

전생도 이처럼 뜨거웠는지

 

멀리서 북소리가 울린다

제사장의 주문이 하늘로 퍼져나간다

들러붙은 가난의 냄새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산발한 흰 재가 강물 위로 내려앉는다

 

멀리 떠나온 행자의 두 눈이 몽롱하다

강물은 행자의 번뇌마저 감싸 안는다

내 보폭은 여전히 직각이다

꺾이지 않는 보폭은 업보다

잠수는 또 다른 숨의 연장이다

 

 

 

 

잘난 서열 - 이화인

 

 

술집에 가면

말이 없고 술값 낸 놈은 된 놈이다

 

말은 많아도 술값 낸 놈은 싹수 있는 놈

말도 없고 술값도 안 내는 놈은 치사한 놈

 

말도 많고 술값도 내지 않는 놈은

상종 못 할 개 쌍놈이다.

 

 

 

 

개똥벌레 - 송준규

 

 

그까짓 이름이야

반딧불이든

개똥벌레든

뭐 그리 대수던가요

 

피바람

몰아치던 그날 밤*

물동이에 핏덩이 숨겨 이고

내달린 천리 길

가시밭 헤치고 미역바위 넘나드는

명로冥路보다 험난한 길

 

구만리 짚신골에 숨어살며

거북등처럼 부르튼 손발로 아슬아슬

황보 씨네 끈 이어 내렸지요

 

오늘도 광남서원** 추원단 담장 밑에

외따로 쭈그려 앉아

풍찬노숙

여태껏 도련님 홀로 모시고

개똥불 깜빡여 밤하늘 뭇별과 대적하는

충비단량지비忠婢丹良之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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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유정난(1453)

**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읍 성동리에 위치한 서원, 황보 인 선생을 배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