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2)
김창집1
2023. 10. 2. 00:19
♧ 바람의 마을
세화는
바람의 길
나무 사이로
도도도
하늘 사이로
레레레
지붕 위로
미미미
하루종일
바람의 화음
♧ 소리쟁이에게 배워
소리쟁이는
아프지도 않은가 봐
벌레들이 달려들어
제 몸 다 갉아 먹는데도
아무 소리 안 내잖아
나는 내 치킨
동생이 조금만 뺏어 먹어도
비명 지르는데
소리쟁이는
아깝지도 않은가 봐
다른 벌레들이 찾아와
겨우 남은 꽃대 갉아 먹어도
아까워하지 않잖아
나는 내 급식에
친구가 조금만 손대도
으앙 울어버리는데
♧ 방울꽃
방울벌레 우는
가을이면
아무도 안 보이는
숲속 그늘
모여 살아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지고 말아
슬프지만
바람이 불면
또롱또롱
비가 오면
딸랑딸랑
좋다고
행복하다고
웃으며 살아요
♧ 닭은 개보다 새다
웰시코기 똘똘이
매일 닭에게 진다
매일 아침 닭들이
우루루 몰려와선
똘똘이 집 점령한다
집도 빼앗기고
밥도 빼앗기고
닭들이
넓디넓은 자기네 집 두고
좁디좁은 개집에
둥지 튼 이유
알 낳으려고
알 낳으려고
♧ 배풍등
다른 꽃들은
예쁘게 피어나
주인공 되려 하고
사람들도
특별하게 태어나
일등이 되려 하지
하지만 너는 뭐야
꽃받침엔
낮은 톱니 달고
꽃잎도 뒤로
젖혀지게 피다니
빨강 노랑
열매도
새에게
다 나눠주고 말야
*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 (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