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한수풀문학' 2023호의 시(5)

김창집1 2024. 3. 9. 00:06

 

 

결점 - 문태후

 

 

나로

인하여

좋아하고

너로 인하여

사랑할 수 있어서 좋다

파란 하늘도

하얀 구름도

부는 바람도

내 곁에 있어서 좋다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대로

아쉬운 것들은 아쉬운 대로

되돌릴 수 없기에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숨결

머무는 곳에서

다가오며 스치는 모든 것들은

내 꿈이요

나의 희망이다

 

 

 

 

나의 관념, 크레바스 - 서상민

 

 

화분에 크레바스를 심었다

그해 겨울엔 폭설이 잦았다

동사한 사람들 소식이 들려왔지만

내겐 아무 일도 없었다

 

크레바스는 꽃의 이름이거나

외로워, 라고 말하면

잠시 자전을 멈추고

적막한 뒷면을 보여주는

먼 행성의 먼 이름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세계는 포성이 끊이지 않았고

더러운 인형을 껴안은

아멜리아의 푸른 눈 속에

세상은 온통 크레바스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

끝내 화해할 수 없어서

화분에 물을 주었다

한철 눈과 귀는 불화했고

되뇌던 긍지들은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화분에서 크레바스 꽃이 피었다

꽃은 오래된 나의 종교였지만

 

당신의 귀는 당나귀 귀예요

크레바스 꽃이 속삭였고

 

사랑하는 것들이

자꾸 멀어져간다

 

 

 

 

바람 같이 신태삼

 

 

우리 동네 어르신들 팽나무 그늘 삼아

장기 두면 쩌렁쩌렁 깨우던 목소리는

내 마음 훔쳤나 보다 그 추억 먹고 살았어

 

여름 가고 벚나무엔 가을이 당도하고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마저도 바람 같이

내 영혼 흔들어 깨워 또 하루가 지난다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2023년 통권 제1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