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김순남 시집 '내 생에 아름다운 인연'의 시(6)

김창집1 2024. 3. 11. 00:02

 

 

호자덩굴

 

 

바위를 덮고

나무 밑둥을 끌어안고

까르르 왁자한 꽃 놀림이

냇가 웅덩이에 물장구 치대었는데

 

어느 종자가

오지게도 걷어갔느냐

모질고 지랄 맞은 손모가지다

   

몇 해를 빈 걸음만

바위 밑에 앉히고

실낱같은 뿌리 하나 살아나기를

다시 왕성한 자웅두수 뻗어내기를

내 기도가 힘이 된다면

두려움 없이 가서 엎드리려니

 

 

 

 

한라솜다리

 

 

소멸해가는 이름을 부른다

한때는 에델바이스로 불림며 팔려간

한라솜다리

지금 어쩌고 있는지 몰라

 

헛바람에 쓸려간 탑동바다 돌담 사이로

살갑게 구르며 달빛 적시던 잔물결들아!

보조개 곱게 피던 서른 몇 순정의 은숙아!

철학의 부재를 한탄하며 고3에 목매어 버린 흥국아!

설렘과 호기심 수많은 지적욕구의 재잘거림을

단절의 자폐 속으로 밀어 넣은 선희야!

백약이 좌보미 아부오름을 청순하게 밝히던 피푸리풀아!

어쩌다 외로이 죽었더냐

 

아흔아홉골 시퍼런 정기로 솟은 바위에

너 하나 꼭꼭 숨겨두자던 석곡아!

너를 잃고 울다가 기껏 두 달 만에 그쳤구나

폭낭오름 족은 바리메 큰바리메 이승악오름뿐이더냐

중산간이 아프다, 위태롭다

해안변이 무너지고 있다

 

강정바다 구럼비 화약으로 으깨지는 참상에

비명도 못 지른 내가 미워서

세화 월정 구엄 바다 낯설어가는구나

외할머니 품 같은 포구에 배는 줄어 적막한데

방파제는 어이하여 높아만 가는지

나는 자꾸 이방인이 되어가는구나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하여

한라솜다리!

너는 어느 도회를 떠돌다

먼지 뒤집어쓴 벽걸이 행색이라도

부끄러워 말거라

명징하게 기억하여라

억만 세월 지켜낼 백록담 서설 퍼런 고향을

 

 

 

 

방울새란

 

 

모지오름 너른 벵디에

풀을 뜯고 꽃물 찰랑이던

소들의 크고 순한 눈망울 속에

물장구 치고 놀던

방울새란아

산제비란아

노란별수선아

잔대야

둥근잔대야

사초야

고사리야

엉겅퀴야

시원의 골짜기 건너

탐라 천년을 사뿐히 수놓은

꽃들아 풀들아

하루아침에 갈아엎고 빼앗긴 땅에

이름도 생소한 이탈리안 나이그라스목초 단지

뽄 좋구나

행여 머물러보는 바람만

사라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며

목젖을 울리는구나

 

 

         *김순남 시집 내 생에 아름다운 인연(도서출판 각시선051,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