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의 시(7)
♧ 빈집
저, 저것들이?
나 집에 가고 싶다 할 때는 꿈쩍도 않더니만
헛기침 칵칵 뱉던 하르방 먼저 가고
딸 아들 다섯 남매 실하게 커서
제 앞가림은 하고들 살아주니 의기양양하여
넓은 집 너른 텃밭 거느리고
두 팔 휘저으며 골목이 좁다 할 때는
세상 다 가진 것 같았지
구십 다 된 노인이라지만 주사 몇 대 맞으면
집에 갈 줄 알았다네
요양원 창문 너머 달은 밝아
안거리는 쥐며느리 득실
밖거리는 거미줄 이레착 저레착
살뜰히 다듬어 놓은 마당에는
살갈퀴 소리쟁이, 지붕 위엔 방가지똥까지
온갖 잡풀이 내 세상이여 차지하고 들어
아귀다툼이 따로 없구나
이승을 비우고 버리는 일보다 더
무엇을 버려야 허망이라는 말을 껴안을 수 있을까
비움이 부자라는 옛말이
슬프다
나의 빈집은
쓸쓸한 틈이 없네
♧ 야고
기대지 않고 사는 삶이
어디 있으랴
끼리끼리 내어주고 기대며
생의 절정이란 서로를 위해
웃는 일
빈자의 무욕은 아름다워서
외로움도 발그레 꽃으로 핀다네
♧ 일강정 푸른 물아
바람 따라 넘실대는
이랑과 고랑을 넘고 넘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몸을 푼
섬,
보말 오분자기 소꿉놀이 뒤로
붉은발말똥게 숨바꼭질 여미고
해 얹고 달 띄운
어머니의 바다
눈부신 것들 속에 깃든
맨살의 눈물겨움이
아리게 흔들리고 있는 바다여
철없이 피어난 꽃잎에
실핏줄 터지는 벌노랑이야
칼바람 안고 선
솟대야
내 푸른 고집이
진압되어야할 무리라는 구나
강정천 맑은 물에
산란을 품어온 은어 떼
진압 대상이라는구나
진압해야만 한다는구나
*김순남 시집 『내 생애 아름다운 인연』 (도서출판 각 시선 051,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