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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의 시조(2)

김창집1 2023. 10. 4. 10:18

*세한도

 

세한도 여정을 읽다

 

 

별도봉 가는 길에 내 눈을 사로잡은

세한도다시 만난 추사秋史와 제주

우뚝 선 제주국립박물관

두루마리* 펼쳤다

 

모슬포 거센 바람

수선화 맑은 향기에도

스승의 눈빛마저 가물가물 저물어가고

대정골 가시울타리 안

외로움만 살찔 때

 

북경 길 발품 끝에 만난 귀하디 귀한

만학집晩學集,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조선 땅 삼천리 가로질러 풍랑의 바다 건너

서책이 적거지에 들어온 봄날 오후

웅크린 자릴 털고 제자의 지극정성에

스승은 갈필을 세워 고마움을 그리다

 

메마른 벌판 위에 허술한 초가 하나

노송의 긴 가지가 꺾일 듯 뻗어 있고

벌판에 잣나무 두 그루 형제처럼 서 있는

툭 던진 한마디 말 우선藕船**, 감상하게

권세와 이득에 물들지 않은 의리

절대로 변하지 말자

낙관***으로 말하다

 

상적이 세한도를 펼쳐 보는 순간

절로 흘러내린 감격의 눈물 갈아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감사 편지 쓰다

 

-이번 사행使行길에 연경燕京에서 표구하고

옛 지기知己 분들께 두루두루 보인 후에

시문詩文을 청하고자 하오니 해량하여 주소서-

 

신의를 굳게 지킨 사제 간 마음 읽은

청나라 초청 문사文士 붓 들어 일필휘지

열여섯 제찬制撰을 받고

경성으로 돌아오다

 

이 손 저 손 건너 현해탄 건너버린

기막힌 사실 앞에 달려간 손재형***

석 달간

간청에 감복한 후지즈카****

조건 없이 돌려주다

 

해방 후 정인보, 이시영, 오세창도

보물이 돌아온 것은 강산을 되찾을 징조요

고심에 찬 삶을 겪은 선열이다 찬하다

 

인생, 가고 옴이 꿈과 환상일까

영원한 주인 찾아 돌고 돈 178

손창근****** 숭고한 기증에

한반도가 환호하다

 

특별실 유리관 속 짙은 묵향 따라

꿈틀대는 세한도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서서히 무딘 내 영혼도

서서히 깨어나더니 반짝이는 이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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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5m ** 제자 이상적 호 *** 長毋相忘(장무상망 :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이라 쓰여 있다 ****서화가 *****추사를 무척 존경하고, 세한도를 소장했던 일본인 ******손재형 아들 손세기 선생 장남으로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동학사, 2023)에서

 

 

 

*대정 추사관
*추사 적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