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3)
♧ 노르웨이 설원에서 – 임미리
노르웨이 자작나무 숲에 이끌린다
광활한 대지 끝없는 설원에 빠져든다
햇살만이 백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고
아련히 돋아나는 불온한 정서
살며시 바람 옷을 걸친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야생 노루 한 쌍
뒤뚱거리며 달리는 뒤태의 유혹 현란하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 없는 낯선 길
안내라도 하겠다는 듯 앞서는 노루
발자국을 수놓으며 바람을 일으킨다
이방인의 마음 자락에 낯선 길이 들어선다
이 설원의 언덕에 세 들어 산다면
첫눈 같은 사내를 만나
첫눈 같은 사랑을 하고
백석의 나타샤처럼 사랑을 받으며
비탈진 마음 곡진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그 사랑, 바람처럼 덧없이 녹아 버리겠지만
아무도 훔칠 수 없는 기억 가슴에 품었으니
윤슬에 돋아나는 환상의 날갯짓
끝없이 끝없이 펼칠 수 있으리라
에메랄드빛 찬란하게 빛나는 협곡에
햇살처럼 고이 스며들어 마음 자락 깊어지면
빙하처럼 청량하게 물들어
이 바람의 설원에서 천년인 듯 살아도 모르리
♧ 이방인 시편 - 장성호
-어떤 풀꽃
서초 고속도로변 오솔길
이른 아침 오래된 물푸레나무가 어둠을 들이마신다
한 작은 여인이 눈물을 삼키며 오지 않는 그 사람을 하염없이 그리워한다
숲속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랑은 머무를 것이고 극복할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혀지고
사랑의 상처는 아물어질 거예요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난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 못해요
그의 발자국 소리에 내 심장이 얼마나 터질 것 같았는데요
그의 가벼운 시선에도 내 눈이 얼마나 불꽃처럼 타올랐는데요
그의 숨소리에도 내 가슴이 얼마나 숨막힐 것 같았는데요
그녀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는 나를 가까이 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기에
그가 나에게 상처를 준 게 아니지요
그를 내 사랑으로 바꾸기 위해 난 무엇이든 다 했어요
난 그를 아주 오랫동안 사랑할 것 같아요
숲속에 이슬 맺힌 풀꽃 하나
오지 않는 한 이방인을 하염없이 그리워한다
♧ 헛꽃 – 정미화
씨앗을 맺지 못하면서
화려하게 치장한 바람잡이
행운을 불러오기 위해 진한 꿀 향기로
호객 행위를 한다
남들이 손가락 하나 잘 놀려
쉽게 부를 부른다 하여
주식 마당에 꽃은 심어 보았다
숫자를 잘 조절해 보려
눈알을 돌려보고 순간을 잡으려니
손가락이 떨리고 다리는 흔들리고
식은땀이 난다
어떤 밭에 얼마의 꽃을 심어야 동그라미가 늘어날까
그래프는 살아 있어 오르내리며 춤을 추고
빨강 파랑이 심장에 펌푸질을 한다
꿈속에서도 미래를 점치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밥상에는 숫자가 차려진다
누군가는 바닥을 보아야 하고
누군가는 환호성을 지르는 마당에
헛꽃을 이용해 열매를 많이 맺으려 하였으나
그 씨앗 땅에 떨어져 결국 파산이라는
붉은 딱지로 온 집안을 물들일 것 같다
* 월간 『우리詩』 4월호(통권 43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