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3)
♧ 제비콩
우리 외할머니 집
텃밭 돌담 아래
분홍 분홍 분홍 꽃
제비 떼처럼 피었어요
할머니 집 처마
집 짓고 살던
제비 가족
강남으로 떠나기 전
할머니에게
선물 주고 갔나 봐요
분홍 분홍 분홍 콩
맺힐 때 떠났다가
동글동글 씨앗
돌담 아래 콕콕 심을 때
다시 돌아올게요
외할머니는
돌아오는 봄날만
손꼽아 기다려요
♧ 왜가리
무릉 연못 지나칠 때
엄마 기다리는 새 한 마리
돌아올 때 보니
안 보여요
그 사이
엄마 찾았나 봐요
참 다행이에요
♧ 뚱딴지
나만 보면
뚱딴지 같은 말만
한다고
치근덕치근덕
어느 날
담벽에 돋아난
진한 초록풀
뚱딴지라나
그 말 듣고
말도 조심
행동도 조심
어느 날
해처럼 달 같은
샛노란 꽃송이
날 닮았다나
♧ 이름 바꾸기
중대가리나무는
언제나
입이 삐죽삐죽
왜 내 이름은 이럴까
백일홍
산수국
옥잠화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중대가리가 뭐야
잎사귀도 초록
꽃도 동글동글
눈도 반짝반짝
마음도
순한데 말야
중대가리나무
꿈속으로
또르르 굴러온
이름
알알이
구슬꽃나무
♧ 자연 체험장
논술방 체험장엔
갖가지 식물, 자라, 곤충들이 산다
오늘 아침엔
푸른 달개비 위에서
고추잠자리가
휴식 취하러 왔고
벌 한 마리가
한참 놀다 갔고
여뀌 줄기 사이 사이
개미가 4층 집 지었다
풍선덩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벽 너머로 기웃거리고
자주달개비가
비 맞고도 활짝 웃는다
나도 덩달아 달개비가
되어버린다
*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 (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