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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문학' 2023년 35호의 시조

김창집1 2023. 10. 9. 08:58

*둥근잎유홍초

 

 

요양병원 일지 4 강문신

 

 

그에게 삶의 목적을 구태여 묻지 말라

그에게 삶의 의미도 꼬집어 묻지 말라

간병인 도움 없이는 몸 하나 꼼짝 못 하는

 

요양병원 옆 침상의 사지가 마비된 환자

정신은 멀쩡하여 더러 불평도 하고

왕년엔 뭘 뭘 했노라고 제 자랑도 곧잘 하는

 

한밤중 곤한 고요를 일순 그가 깨뜨렸다

어머니 보이더라도 가만 손짓하더라고

이러다 죽는 것 아니냐며 이를 어째! 어째!”

 

 

*한라돌쩌귀

 

 

주시옵고 김영순

 

 

아침 밥상 앞에 두고

주시옵고 주시옵고

 

자신의 생애만큼 기도하는 어머니

 

지금껏

안 준 거 보니

앞으로도 안 줄 건가 보다

 

 

*구름송이풀

 

 

느린 하루 김인순

 

 

산속에서 가끔 벌통 옆에 누워요

고요에 엎디어 꽃향기에 기대어

그리운 바닥에 대어요 껍질 같은 이 몸도

 

귓불 아래 솜털도 바스러지는 이 하루

수풀 사이 느린 걸음은 말 없는 기도였으니

생각도 양말 벗듯 벗고 별과 함께 누워요

 

 

*가시엉겅퀴

 

 

찔레꽃 아리랑 송인영

 

 

틀어진 혼사가 가시로 또 온 것일까

대낮부터 술에 취해 뾰족해진 용호 삼촌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물어뜯을 기세다

 

죽는 것도 어렵지만 사는 건 더 힘들어

납작하게 엎드려 버텨온 이승의 삶

마지막 남아있던 자존심

바람으로 날린다

 

총칼과 죽창 같은 그딴 것은 필요 없고

누가 가르쳐 줍서, 내 성이 무엇인지

하늘에 통곡으로 물어도

저 낮달은 말이 없다

 

 

*며느리밑씻개

 

일발장전 오은기

 

 

무슨 심술인지 며느리만 찾아오면

 

간병인 만류에도

똥 싼다아

똥 쌀거야

 

병상에 기마자세로

손가락 겨누는 할망

 

 

 

           *서귀포문인협회 간 西歸浦文學2023년 통권35호에서

                                     *사진 : 가을꽃들

 

 

*수크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