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문학' 2023년 35호의 시조
♧ 요양병원 일지 ․ 4 – 강문신
그에게 삶의 목적을 구태여 묻지 말라
그에게 삶의 의미도 꼬집어 묻지 말라
간병인 도움 없이는 몸 하나 꼼짝 못 하는
요양병원 옆 침상의 사지가 마비된 환자
정신은 멀쩡하여 더러 불평도 하고
왕년엔 뭘 뭘 했노라고 제 자랑도 곧잘 하는
한밤중 곤한 고요를 일순 그가 깨뜨렸다
어머니 보이더라도 가만 손짓하더라고
이러다 죽는 것 아니냐며 “이를 어째! 아~어째!”
♧ 주시옵고 – 김영순
아침 밥상 앞에 두고
주시옵고 주시옵고
자신의 생애만큼 기도하는 어머니
지금껏
안 준 거 보니
앞으로도 안 줄 건가 보다
♧ 느린 하루 – 김인순
산속에서 가끔 벌통 옆에 누워요
고요에 엎디어 꽃향기에 기대어
그리운 바닥에 대어요 껍질 같은 이 몸도
귓불 아래 솜털도 바스러지는 이 하루
수풀 사이 느린 걸음은 말 없는 기도였으니
생각도 양말 벗듯 벗고 별과 함께 누워요
♧ 찔레꽃 아리랑 – 송인영
틀어진 혼사가 가시로 또 온 것일까
대낮부터 술에 취해 뾰족해진 용호 삼촌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물어뜯을 기세다
죽는 것도 어렵지만 사는 건 더 힘들어
납작하게 엎드려 버텨온 이승의 삶
마지막 남아있던 자존심
바람으로 날린다
“총칼과 죽창 같은 그딴 것은 필요 없고
누가 가르쳐 줍서, 내 성이 무엇인지”
하늘에 통곡으로 물어도
저 낮달은 말이 없다
♧ 일발장전 – 오은기
무슨 심술인지 며느리만 찾아오면
간병인 만류에도
“똥 싼다아”
“똥 쌀거야”
병상에 기마자세로
손가락 겨누는 할망
*서귀포문인협회 간 『西歸浦文學』 2023년 통권35호에서
*사진 : 가을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