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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5주년 추념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3)

김창집1 2023. 10. 11. 00:21

 

 

제주43, 항일을 잇다 - 김경훈

 

 

누군가는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은

43이 아니라고 우겨대더니

 

어떤 이는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은

43과 관련 없다 잡아뗀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건 건가

나는 오직 나고 너는 다만 너인가

 

그러나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역사 또한 면면한 항쟁의 유전자로 이어진다

 

43이 다 해결되었다는 착각 속에

항쟁의 주도자들은 두 번 죽고 있다

 

사회주의가 항쟁을 주도했다

사회주의는 항일과 해방공간의 지지 이념이었다

이걸 부정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항일과 43은 하나로 연결된다

예비검속도 43이다

나가 너고 너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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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선생의 말.

 

 

 

 

외꼴절 신농치 김섬

 

 

이유도 어시죽었댄 소문이 파다합디다만

게무로사

신품종 배추씨 무씨 처음으로 보급했다고 죽여시카예

신도들이영 농사 잘 지엉 ᄒᆞᆫ디 나누곡 ᄒᆞᆫ디 팔멍

재미지게 살았다고 죽이진 안해실 거고

토벌대 피행온 신도 청년들 밥 먹였댄 죽였다고도 하고

토벌대한테 장작값 달라고 했다가 끌려갔다고도 합디다만

 

남선머를* 귤낭에 묶엉 팡팡 총 쏘아댔주마는

신덕 좋은 스님이난 총알도 비켜갔댄마시

하는 수 어시 동네 청년들한테 죽창으로 찔러불렌

무지막지 찔러불렌

가부좌 틀고 염불하멍 그 자세로 굳었댄 하는디

그 염불 소곱엔 목숨 부지하젠 죽창 들 수밖에 어신

그 청년들 용서도 들어실텝주예

 

사리로 새긴 전설

신농치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리는

함덕 외꼴절 신홍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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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머를 : 함덕마을 남쪽 지점의 지명.

 

 

 

 

연두의 죽음 김성주

 

 

배가 침몰한다

 

핏방을 무늬의 흰 홑옷 걸쳐 입은 겨울손님이 오신다는 소문 파다하다

집집마다 손님맞이 불 지피느라 분주한 동백마을

그러거나 말거나 천조국의 새 하늘을 쪼개며 날아간다

 

연두가 죽었다

극락전 투명 유리창에 부딪쳐 파닥거리던 날개

 

요금표, 九泉에서 동백 마을까지 구천만 원

기억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배가 침몰한다

 

소문은 소문으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검은 강물 따라 흘러온 주인 잃은

동백꽃, 보자기를 풀어본다

 

붉은 꽃잎

노란 꽃가루

투명 젖병

빨대를 입에 문 연두

자궁

 

오늘 아침 연두가 죽었는데, 빨강만 보인다는

당신, 보잉747 타고

가세요

 

 

 

 

풀빛 - 김수열

 

 

   주정 공장에 갇혀 하루 한 끼 배급으로 살았수다 징징대는 말젯거 때문에 어머닌 한 끼도 못 먹어십주 봄이 오고 날이 따뜻해지난 공일마다 목사가 완 뭐렌뭐렌 연설을 헙디다 줄지어 마당에 앉았는데 듣는 사람은 없고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는 거라마씀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이 일어서려는데 어머니 입바위가 퍼렇허게 물들고 앉았던 자리엔 풀이 하나도 없는 거라, 풀이

 

   육십 년이 지났수다만 풀만 보면 풀빛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마씀, 이제도

 

 

 

 

긴 무덤의 끝 - 김순남

 

 

겨를 없이 뱃길에 떠밀려

대전형무소 차가운 벽에 머물던

귀향의 꿈은 실핏줄마다 그물을 엮었다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여명을 덜컹거리며 곤룡재 넘을 때도

죽음이 죽음을 덮는 골짜기가 될 줄은 몰랐다

 

수로처럼 길게 파놓은 구덩이 앞에서

머리 박고 엎드려 살려달라는 말조차 잊었다

 

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

뼈와 혼령이 산처럼 쌓인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의 끝에서

비바람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시간을 닦는다

 

죽음을 이겨낸 사월 바람이

밭갈이 때 나온 뼛조각들 비료 포대 걷어내고

늙은 누이가 젊은 사진을 품고 울었다

오빠! 오빠!

늙은 아들의 색 바랜 엽서를 움켜쥐고 울었다

아버지! 아버지!

부름과 부름이, 눈물과 눈물이 삽을 들고

긴 무덤의 끝을 씻는다.

 

 

*제주43 75주년 추념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한그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