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의 시조(5)
김창집1
2024. 6. 28. 02:00
♧ 섶섬
Ⅰ
성산에서 놓친 해를
서귀포서 다시 본다
내 마음 칠십리는
언제나 빈 포구인데
한 줄기 뱃길 끝에서
표류하는 섬이여
Ⅱ
보목동 산 1번지
섶섬 해돋이야
수천 년 늙은 바위에
홍귤 꽃도 피워내고
수난의 바다 곁에서
파초일엽 키웠지
Ⅲ
이제는 지워야 하리
이마에 걸린 수평선
매달 음력 초사흘과 여드렛날은 용이 되게 해달라고 빌던 구렁이 용왕의 야광주를 찾지 못해 백 년을 바닷속만 헤매다 죽었다지만,
아침놀 번진 칠십리
전설보다 슬퍼라
♧ 비양도(飛陽島)
바다는
내 생활 유배지
아침 6시
출어하면
우도 끝에
가시처럼 돋아 있는 불빛들
썰물 때는
한 줄기 길
사발꽃이나 피우다가
밀물 녘에야
비로소 섬이 되는 비양도
바다의 눈발이 더하면
새미야, 한솔아
그제사 성산포만한 동이 트고
아빠는
헤어진 그물코보다 슬픈
제주도의 동쪽 날개를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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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우도면 비양도를 제주도의 동쪽 날개, 한림읍 비양도를 제주도의 서쪽 날개라 부른다.
♧ 지귀도
아득한 옛날
위미리 사람들의 유산
이젠 갈매기도 머뭇대는
남의 땅인걸
어느 뗏목이 흐르다 머문 그 자리
그리움 하나로
눈 시리구나
가고 또 오는 것이
하늘의 일이련만
눈짓을 해도
말이 없고
우리가 살아있는 죄로
수평선보다
더 흐려 뵈는 위미리 산 146번지
*오승철 유고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 (다층,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