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4)
김창집1
2023. 10. 15. 00:11
♧ 자주괴불주머니
달팽이들이
자주색 옷 잎고
땅으로 땅으로
내려와
주머니 가득
담고 온
봄 향기
전하려고
♧ 개미의 탑
세렝게티 넓은 초원
한가운데
우뚝 솟은 토성
초원의 개미들이
한 입 한 입 물어다
단단하게 지은
흙탑이라는데
회오리바람 불어도
번개가 번쩍여도
쓰러지지 않는다
고 자그만 개미들이
불가사의한 탑을
완성했다는 건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했다는 것
하루아침에 이룬 것 아니라
수천수만 밤 땀 흘렸다는 것
그런 이유로
개미는
인류 최고의 건축가
♧ 나뭇잎 우주
비가 올 듯 말 듯
바람은 불 듯 말 듯
화분에서
땀 뻘뻘 흘리는
달개비
어, 뭐지?
돌돌 말려 있는
잎사귀 하나
하얀 거미줄로
꽁꽁 감싼 채
엉켜진 보풀
슬몃 떼어보니
글쎄,
애벌레가
꿈틀꿈틀
애벌레에게
이 잎사귀 귀퉁이가
우주
얼른 손 떼고
돌려준
벌레의 우주
♧ 감자꽃 우주
엄마 따라 감자밭 갈 때
내 딸 내 딸
불러주던 노래
하얀 꽃 피웠지
엄마 따라 감자밭 갈 때
날나라 날아라
날개 달아주던 마음
노란 꿈 피웠지
♧ 사려니 꽃향유
햇살 아래
바람 솔솔
가을이라
모든 게
시들시들
그 사이 사이
보랏빛 꽃들이
사려니숲
밝혀요
*양순진 생태동시집 『반딧불이 놀이터』 (한그루, 20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