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의 시조(4)
♧ 검정 고무신 다섯
-섯알오름 소고
누가
아버지를 빨갱이로 낙인찍었나
6.25 피바람에 밤 2시 예비검속자들* 싣고
달리는 GMC에서
벗어 던진 고무신
칠석날
한 줄로 세워
탕, 탕탕 쓰러진 후
아버지 고무신 따라
찾아간 섯알오름 탄약고
막아선 철조망 잡고
통곡하는 어머니
7년 애원 끝에 해제된 출입 금지
파헤친 구덩이엔 뼈와 뼈 엉겨 붙어
누군지 알 수가 없어
백조일손百祖一孫** 되었네
견우직녀 만나는 밤 집마다 향을 피워
제사상 영정 앞에 한 잔의 술을 올리고
엎드린 어머니 아들딸
흐느낀 지 72년
원혼이 서려 있는 학살 터 길을 돌아
추모비 앞에 서면 명치를 꾸욱 누르는
다섯 쪽 검정 고무신
가득 고인 하얀 눈물
---
*6.25 전쟁 초기, 적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라고 미리 잡아 가두었던 사람들
**조상이 각기 다른 일백서른둘 할아버지의 자식들이 한날, 한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어 한 자손이 되었다는 뜻
♧ 4월의 평화공원
4월
동백꽃이
뒹구는 거친오름* 자락
억새밭
뚫고 나온
어린 고사리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묵념만 하고 있다
늙은
휘파람새
행불자 묘비 위에 앉아
호오익
호오오익
수백 번 호명해도
벚꽃만
꽃비처럼 날리고
침묵으로 답할 뿐
---
*4.3 평화공원이 있는 오름
♧ 격납고
6월
비바람 치는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절대로 잊지 말자
오색 리본 휘날리는
제로센
낡은 격납고엔
녹슨 철사 비행기
♧ 도틀굴 앞에서
싸락눈 흩날리는 선흘리 동백동산
48년생 동백나무 피고 진 동백꽃이
흥건한 곶자왈 길을 가다
도틀굴을 만났다
회색의 닫힌 철문 나드는 매운바람
떠도는 스무 원혼 훠이훠이 불러내는
선지피 토하며 우는
동박새도 보았다
♧ 슬픔의 꽃
새 천년 접어들자 회색빛 하늘 아래
구제역, 조류독감에 쓰러진 100만 마리 매몰된 산야의 물컹한 곳마다 비바람 불 때면 꼬끼오, 괵 괵, 꿀굴, 음매애 울부짖는 소리
들꽃들
무더기로 피어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오영호 시조집 『농막일기』 (동학사,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