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의 시(11)

김창집1 2024. 11. 6. 00:05

 

 

화성, 어디쯤에 이르러

 

 

어느 하늘 아래 그림자 깊어지나

 

벽과 벽 사이 천 길 벼랑 갈라놓았던

 

빈 틈새 알아챘을까, 두려움 깊었을까

 

파란만장 나부끼는 아비의 길을 밝혀

 

행궁의 길 이르러 뜨거운 맨발이거나

 

흙바닥 낮게 엎드린 백성의 미음이거나

 

품에 든 아들로 하루여도 오죽 좋았을

 

간절히 부르는 노래 온 세상이 받들어

 

그 이름 성군이라 답하는 초록 숲 그늘 짙다

 

 


 

반가사유상

 

 

텅 비어 흐르는 몸

 

어디쯤에 임하시나

 

그윽이 바라보는 무한 우주 티끌 하나

 

입가에 맴도는 미소

 

사람이라, 사랑이라

 

 


 

작은 신

 

 

운동화는 넉넉히 너를 향한 발걸음에

어찌해 빛나는 길, 되레 멀리한 구두는

가만히 돌이켜보니 티끌만 한 흉터였다

외삼촌 육지 선물, 볼이 좁아 욱여 신다

발가락 곪은 줄도 모르고 며칠째

기쁨도 벌겋게 그만, 벗어 든 처음 구두

애석히 놓지 못해 뒤뚱이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놨다, 선반에 올려놓고

아무리, 봐도 한 뼘 발 또 그렇게 작은 신

 

 


 

마중

 

 

바람이 때리고 간 얼굴도 얼굴이지만

 

부르튼 손 감추려 수세미로 문질러

 

벌겋게 오르던 핏발 허리춤에 감추고

 

얼었다가 녹았다가 막 틔운 어린잎에

 

이제 그만 돌아서려 추적대는 싸라기눈

 

벗을까 더 껴입은 옷 매번 망설이는 나

 

 


 

울음의 진원

 

 

그 속울음 이러할까 용솟음치는 울돌목

 

군주마저 시기한 덕목은 무엇일까

 

판옥선 매어둔 칼이 울음을 가른다

 

뭇사람들 안위에 오직 볼모로 나선

 

살고자 했을까, 나를 향한 믿음에도

 

온전히 딛고 선 바다 엄습하던 한 가닥

 

북소리 아득히 열두 척 배의 승전도

 

기억을 지운다휩쓸려 가버린다

 

뒷모습 힘을 보태도 저 시름 이슥 깊다

 

 

                *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가히,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