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조(1)
♧ 두가시* - 김영란
삼십 년 살았어도
모르는 게 더 많아
기 싸움 줄다리기도
승패가 나질 않아
후생엔 만나지 말자
용케 그 뜻 일치 하네
제주해협 건널 무렵
멀미가 심했는지
가시버시 오던 길에
버시만 떼어놓고
아득히 멀고도 가까운
두가시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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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제주어
♧ 이파리들에게 - 김정숙
팔월 햇살 아래
눈부신 초록이여
삼중수소가 어젯밤 내린 안개 같은 거라고
헛소리 떠드는 숲속
젖은 길을 걸었다
한때의 아름다움은 네 몫이 아니란다
주어진 임기 동안
열매 맺고 씨 뿌리라고
꼭대기 볕 좋은 자리에
이파리 널 앉혔다
가을마다 너는 너를 증명해야 할 거야
바닷바람 벌써 시들어 마른 눈물 길어 올리고
어둡고
조용한 밤은
울긋불긋
떠돌 거야
♧ 서대문형무소 곰솔 - 오영호
하늘의 높은 것을 어찌 모르려만
옆으로만 가질 뻗어 옥사보다 낮춘 것은
질곡의 비바람에도 살아남기 위함이지
일제의 서슬에도 저항의 뿌리는 살아
그 핏물 받아먹고 자란 조선 곰솔
오늘도 가부좌 틀고 증명하고 있구나
♧ 황근꽃 - 이애자
보리밥
닥 닥 말아
겨를 없이
살아서
얕게 핀
분 냄새가
너무 좋아
흠 흠 흠
어머니
피었다지던
절간가는
반나절
♧ 상사화 - 장영춘
숭숭 뚫린 현무암 올레 밖을 서성이다
기어이 장마 빗속에서 터져 버린 붉은 가슴
그대의 젖은 맨발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 계간 『제주작가』 2023 가을호(통권82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