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6)

김창집1 2024. 11. 18. 02:23

 

 

아직이에요 - 김진숙

 

 

1.

 

  돌고래 등에 업혀 도착할지 몰라서요

 

  집은 기다려요 무턱대고 기다려요 밖이 잘 보이도록 커튼은 달지 않았어요 자주색 삼각 지붕은 슬픔이 고이지 않아 좋아요 저 혼자 기다리기 좋은 집이에요 낮에는 마당 구석에 귤나무를 심어요 밤이면 별자리 짚어가며 숫자를 세요 여기는 중산간 마을 기다림을 아는 집이에요 별들도 찾아와서 놀다 가기 좋아요 비스듬히 창문으로 엄마 같은 달이 매일 와요 열 번째 봄이 지나 이제 열다섯 살이에요 베트남 땅끝마을 까마우라 했어요 엄마는 고향 마을 같아서 제주가 좋다셨는데 아빠는 아직 이에요 오빠도 아직 이에요 이삿짐도 아직이에요 엄마랑 아빠가 오빠만 데리고 제주도로 이사 간 줄 알았는데모두다 아직이에요

 

  이유를 아직 몰라서 집은 기다려요

 

2.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집 앞을 지난다

  누구는 그만 이제 잊어버리자 하는데

  이삿짐 도착할 때까지

  같이 기다리고 싶은 집

 

 


 

정다빈, 그리움 김영숙

    -팽목항에서

 

 

기억에 녹이 자라면 야만은 몸집을 키위요

 

치워요 방명록 따위 눈물 찍지 말아요

 

오늘도 가만있을까요 손을 잡아 주세요

 

 

답답해요 나가고 싶어요 컨테이너는 싫어요

 

저 소리 안들리세요 친구들이 울잖아요

 

십 년을 기다렸어요 진실을 밝혀주세요

 

 

먹돌에 새긴 그 이름 정다빈, 그리움

 

별친구 키를 맞추어 민들레가 피었어요

 

세월호, 팽목 기억관에서 손 꼭 잡고 나를 봐요

 

 


 

팽목 기억관을 찾아 - 이애자

 

 

침침한 컨테이너 안에서 또 한 번 침몰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그 말조차도 입안에서 침몰이다

 

 


 

김녕, 성세기해변 - 장영춘

 

 

바다만 바라봐도 그 소리가 들린다

 

김녕, 성세기해변 파고 속에 돌아누운

 

창세기 것 구절 같은 이름들 호명한다

 

수평선을 거두고 이제는 돌아오라

 

아직도 지우지 못한 스마트폰 메세지

 

팽목항 먹먹한 가습, 멈춰버린 울음 한 채

 

 


 

0849분을 인양하다 - 조한일

 

 

4월이 와도 맹골수도는 아무 말이 없구나

 

푸르던 꽃잎들이 물속으로 지던 날

있어도 없었던 나라 여전히 변한 게 없고

불러도 대답 없는 삼백넷 이름 앞에

절대 잊지 않겠노라는 팽목항의 그 약속

가만히 있으라면서 그들만 탈출했다지

안산에서 제주까지 끝나지 않은 수학여행

기울어진 세월호 속 꿈 많던 내 아이들아

그 먼 곳 그 산하에도 시간은 가고 꽃은 피니?

그렇게 다녀온다던 너희들은 가고 없고

아무것도 모른 채 너는 가고 나는 남고

 

사일육 공팔 시 사십구 분 아직 인양 중이란다

 

 

             *계간 제주작가 2024년 가을호(통권 제8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