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1)
[작고 회원 작품 리뷰]
♧ 돌하르방 - 김공천
왕방울 눈 세월에 비켜
세상 흐름 지켜보며
아픔은 걷어모아
두 주먹에 쥐고 섰나
모시는 님은 풍화한 듯
아니 잠시 출타한 듯
벙거지 밑 드리운 귀
오만소리 다 듣겠다
주먹코는 속속들이
거리 숨결 헤아리나
다문 입 절로 버을어
익살 술술 새어날라
-시조집 『한라의 바람노래』(1986) 중에서
♧ 상사화 – 정태무
닫았던 창을 열고
빛을 찾은 외로움은
뒤늦게 탄嘆을 안고
높이 솟은 그 갈망이
초가을
푸른 하늘만
쳐다보고 섰구나
이별도 서러운데
회억回憶마저 없으리까
상사로 병이 되어
연주황색 여윈 얼굴
불그레
그리움 안고
노을빛에 젖고 있네
-시조집 『탐라』 (1986) 중에서
♧ 하늘 – 김영흥
1
그리움
하도 깊어
갈매빛 타는 호수
이 죄인 들어설 문
이 세상에 아직 없다
볼수록 두려운 거울
하느님을 찾고 있다
2
사는 것은 늘 그렇게
별빛으로 잦아들면
목을 축인 한 줄의 시
한 캡슐의 쓰디쓴 약
지나는 시간의 돛배
내 유언장 실어 보네
-유고 시집 『하늘에서 부르는 출석부』 (1998)중에서
♧ 수평선과 나 – 이용상
바다에 다 버렸다
수평선도 탕진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다 가져간 제주바다
삼백 년 귀양의 세월
그 안이 다 보인다
-시집 『남극성 별자리』(2020) 중에서
♧ 수선화 – 고응삼
한 점 씩 돋운 기쁨
안으로만 모은 정성
끝 간 데 모를 하늘을
남몰래 섬긴 끝에
드디어
봉긋 봉긋한
신화들이 터지다
숨죽인 돌 그늘 위에
남은 방울 터지누나
생각하면 시린 나날
견딘 긴 아픔의 길
하늘땅
부신 날빛이
둘러 환한 내 노래여
-『제주시조』창간호(1989) 중에서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시조』2024 제3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