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5)

김창집1 2024. 11. 26. 00:03

 

 

산다래 윤순호

 

 

바람 세수가 맑게 끝난 하늘을

숱 좋은 초록 이파리로

칙칙하게 가리고

치렁치렁 얽힌 떨기 부지하느라

삼복에 목도 말랐겠다

연신

도란거리는 좁은 계곡으로

쭈뼛쭈뼛 발을 내밀고

더러는

허공을 휘젓는 두 팔로

소나기도 부르더니

그거였구나!

초조해 하던 네 속셈이

초록 열매로 가을을 익히는 일

 

 


 

빼앗긴 여름 - 이범철

     -여름을 배우는 학교에서

 

 

매미가 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울음만으로 여름을 읽는다

하늘 찢어져라 울다가

짧은 명줄 탕진하는 줄도 모르고 운다

밤낮으로 울어야 마침내 가을 올 것처럼

 

매미에게 여름은 오직 울음뿐

울음이 지고 나면 매미는

울음이 다 빠져나간 몸

나무에 걸어 둔다

 

제대로 한번 매미처럼 울지도 못하고 살아온 나

여름마저 빼앗겼다

어떻게 울어야

내 몸 저리

손끝 발끝까지 비어지는 것이더냐 손끝,

발끝으로까지 울 수 있는 것이냐

 

 


 

무책임 - 이상욱

 

 

오늘이

문을 닫는다

 

이름을 어제라 고치고

내일을 열어

오늘이라 한다

 

갈아타기 하는 것을 모를 것이라

지난 것은 과거라며 얼버무린다

 

지새는 이 밤

새벽은 멀기만 한데.

 

 


 

서우봉 해변에서 - 이수미

 

 

발길 따라 걷다 보니 해변가였습니다

갯바람에 실려 온 비릿한 내음이

당신 체취를 느끼게 해 나도 몰래 휘청댔습니다

 

서우봉 해변의 에메랄드빛 물감으로 물들며

손만 잡고 있어도 꽃처럼 살며시 피어나던

그때의 당신 앞에 다시 설 수 있다면

 

어색하지만 수줍은 미소도 살짝 보여 주고

당신 품에 살포시 안기고 싶습니다

 

그때쯤이면 아파트 화단에 철쭉도

무겁게 짓누르는 마음에 빗장을 풀어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누나 생각 1 - 이학균

 

 

제비꽃 흐드러진 저 강둑에

짧은 손내밈도 못하는 허망한 삶

 

아직도 분 냄새 가지 않은

바느질 그릇 속의 꿈은 깊은데

 

젖은 눈시울 훔치는 바람에

일기장을 붙잡고 써 보는 이름이 촉촉이 젖는

 

문득, 새벽 두 시의

어둠을 밟고 오는 누나 생각

 

 

                           * 월간 우리11월호(통권 제43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