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6)

김창집1 2024. 12. 8. 00:08

 

 

백비(白碑) - 김경훈

    -제주43평화공원의 와비臥碑

 

언제까지

누워만 있을 건가

누워 있으면 편한가

등창에 욕창에

온몸 마비 된 채

똥오줌 못 가리며

누워만 있는 건 아닌가

그 모습 보면 또한 편한가

통일된 후 일으키자고

덧없는 기대만 할 게 아니라

일으켜 통일 맞자고

제주43이 다시

통일을 일궈야 한다고

여럿이 입 모아

부추겨야 하는 게 아닌가

모두가 부축해서

일어설 수 있는데도

언제까지 눕혀둘 건가

인제까지 눕혀만 둘 건가

 

 


 

조양방직 김광렬

 

 

  앳된 여공들이 직조하는 가난한 손길 따라 곱게 꽃피어났을 조양방직, 세월과 함께 늙어 옛 공장 건물엔 이제 빈티지 카페가 들어서고 구경 간 나는 그 시절의 아픈 향수가 묻어있는 의자에 앉아 커피에 빵을 곁들여 먹는데, 그저 수수한 치마저고리 입고 일하던 먼 시절의 그 소녀들도 잠시 바쁜 일손 멈추고 재잘거리며 걸어와 함께 먹는 환영(幻影)이 잠깐 머물다갔다 since 1933, 일제강점시대, 나는 일본 자본이 설립했거니 하고 몹시 언짢아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을 뒤지던 아들이, 한국인 형제가 한국자본으로 세웠단다 그 순간 물밀어오는 감격, 촛불눈물 뚝뚝 떨어지던 그 암울한 시대에 한국인이 세웠다니, 한때 이곳은 한국의 새 아침빛을 맞이하고 씨줄날줄 짜고 빚어내던 인견 산업의 첫 산실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 고생 많았던 그 여공들이 새파랗게 그립다

 

 


 

사진을 찾습니다 김규중

 

 

여순 1019를 알아볼 때

놀란 것은

당시를 기록한 사진집이 있다는 것이다

 

진압 부대와 함께 들어온

미국인 칼 마이던스가 촬영한 사진들

항쟁을 진압하는 생생한 모습들

 

그는 당대 최고의 시사주간지 라이프지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여순 항쟁이 터지자 바로 도쿄에서 서울로

군용기를 타고 와서 광주 5연대 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가 앵글로 잡은 여순의 참상은

일마 후 1115일자 라이프지 지면을 채우대

전 세계로 퍼져갔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나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나머지 미공개 사진들을 발굴하고 묶어

사진집을 내게 되었다

 

이 사진집을 보면서

제주 43에는 왜 이런 사진집이 없는가

칼 마이던스는 왜 제주에는 다녀가지 않았는가

궁금했는데

 

어느 책*을 보다가 칼 마이던스가

48428일에 제주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시기는

510 단선을 거부하는 항쟁이 본격화 하고

미군정은 어떻게든 선거를 성공시켜

자신의 정책에 대한 국제적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항쟁을 조기에 종식시키려 총력을 기울이던 때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진척될지 모르는

식민지 해방의 현장에

바다 건너 힘들게 왔을 칼 마이던스가

제주의 속살을 의지를 분노를 불안을

라이프지 특파원으로

앵글에 담지 않았을 리는 없을 거

당연히 그 사진들을 라이프지 본사에 보냈을 거

 

그럼 왜 라이프지에 실리지 않았을까

 

데스크에서 검토하는 시간이

실패로 끝난 510 단선과 겹치면서

미군정의 정책이 일정 부분 실패하고 있다는 것만

전 세계에 알리는 역효과를 낼까 봐서

어떤 압력에 데스크에서 잘렸을 것

그렇지만

어던가에 그의 사진이 있을 텐데

비록 미국의 시각일지라도

 

그래서 사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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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호준, 43 미국에 묻다(신인, 2021)

 

 

                              * 계간 제주작가가을호(통권 제8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