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14)
♧ 먹쿠슬낭
여기 먹쿠슬낭이야
어디라고라고?
여전히 먹쿠슬랑
닭 먹구설랑 오리발 내미는 것도 아니고
월 먹구설랑
월 먹쿠슬당
네 눈같이 작은 보라색 꽃, 멀구슬나무였다니
그때 그 찻집에 가고 싶다
그 환한 미소,
보고 싶다
♧ 가지 끝에 매달린 눈
떠도는 별들이 몰려와
무지갯빛으로 깜박이고 있는 게 쥐 눈이었어
이빨을 갉아 구명을 만들고
어둠 속에서 시간의 출구를 찾아 안구를 밝히는
길은 헤아릴 수 없이 뻗은
수많은 나뭇가지 끝으로 나 있고
몰래 매단 기도문처럼 영롱한 물방울이
쥐똥나무를 환하게 밝히네
어둠 속에 몸을 담그고 물감처럼 풀어져
아무것도 밖으로 쏟아내지 못하고
몇 날이고 캄캄해져 있었어
제 눈 안에서 불안하게 빛나던 눈
살그머니 몸을 물 밖으로 던져보는데
눈이 부시다
어둠의 형식에 안주하면 어둠뿐이야
쓸데없이 망상 같은 발톱들이 자라고
입술을 뚫는 이빨만 자라지
무거운 어둠을 벗기고 눈을 떠야 해
아, 밝다
비 온 뒤 쥐똥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저 쥐의 눈
♧ 우리 함께 살아요
누군가 개양귀비 꽃밭에서
한 움큼 명아주를 뽑아 던진다
꽃들 사이에서 넌출넌출 춤추던 풀이
느닷없이 뿌리가 들려 내던져졌다
용서할 수 없는 풀
꽃다발에 푸른 가지가 조화를 이루듯
빈틈을 메우고 삶이 스며든 풀인데
그것도 눈 밝은 이에겐 가시가 되어
뽑지 않으면 안 되는 아픔이었나보다
작년 거기가 제자리였던
코스모스가 섞이고
어디서 묻어왔는지 간간이 엉겅퀴까지 있는데
꽃이 아니라고 명아주는 버려졌다
머릿밑이 훤히 보이는 빈터를 메워주는
푸르름으로, 풍경을 어우를 수 있는데
코스모스와 엉겅퀴와 명아주와 함께
♧ 바나나 맛 우유, 하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른 아침에
반짝 불이 켜지며 문자와 함께
작은 선물이 도착했다
은근히 당겨 올려지는 입꼬리를 물고
잘 그려지지 않는 사람을 떠올린다
한 번 더 기억해 주길 바라는
고객이 되기 위해서
바나나보다 달콤한 시원한 바나나 맛
유년의 기억이 펄럭인다
어느 순간에 각인된 별 하나
엄마가 쓰던 낡은 삼베 조각보가 떠오르듯
뜬금없이 먹고 싶어지는 자장면
연결고리도 없이 그려지는 풍경 속에
환히 웃고 있는 모습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행운의 편지 보내듯
바나나 맛 우유, 하나 보냅니다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 (서정시학,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