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5)

김창집1 2024. 12. 15. 00:02

                                                     *대구 10월항쟁 기념비

 

푸른 하늘 시월에

     -대구10월항쟁에 부쳐

 

 

시월에

흰옷 입은 사람들 거리로 거리로

미를 대로 마른 갈바람이었네 주림이었네

 

시월에

푸른 하늘 시월에

속불이 터지는 사람들 부청으로 부청으로

익을 대로 익은 고함이었네 목을음이었네

 

배고파서 못 살겠다고

쌀을 달라고 양곡 수집 중지하라고 농지 개혁 단행하라고

개똥이도 소똥이도 몽둥이 들고 리퍼 들고 짱돌 들고

풀 먹은 광목처럼 경찰벽으로 경찰벽으로

 

친일파 척결하라고 구속자 석방하라고

이게 해방이냐고 일제보다 더하다고 인민위원회 인정하라고

천이 되고 만이 되어 총탄에 쓰러지고 계엄령에 맞서면서

농투성이 사마귀들 탱크를 막아서며 해방으로 해방으로

 

시월이면

푸른 하늘 시월이면

쌀을 달라고 농지 개혁 단행하라고

영천에서 칠곡에서 의성에서 허옇게 버캐너울이었네

 

 


 

여순항쟁

 

 

  제주 43항쟁이 일어나자

  거기 진압 명령을 받은 제14연대는

  우리는 동포를 학살할 수 없다며

  38선 철폐와 조국 통일을 명분으로

  무장봉기한다

 

  궐기문

  우리들은 조선 인민의 아들,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복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제주도 애국 인민을 무차별 학살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출동시키려는 작전에 조선 사람의 아들로서 조선 동포를 학살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 인민의 복지를 위하여 총궐기 하였다

  1. 동족상잔 결사반대

  2. 미군 즉시 철퇴

제주도출동거부병사인민위원회

 

 봉기군은 곧바로 경찰서와 관공서를 점령하고 순식간에 순천, 벌교, 보성, 고흥, 광양, 구례를 거쳐 곡성까지 장악한다 이승만과 미군정은 광주에 반란군토벌사령부를 설치하고 진압작전에 나선다 봉기군은 병력과 화력에 밀려 여수를 버리고 백운산, 조계산 인근으로 후퇴한다 1950년 초까지 백운산, 지리산, 백아산, 불갑산, 회문산 등지에서 게릴라전이 이어진다

 

 


 

형제묘

 

 

형제묘라고 하니까

형제들이 오순도순 같이

묻혀 있는 무덤으로 알겠지

양지 바른 곳 그 전망 좋은

만성리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평화롭게 누워 있으니까 말이야

너도, 거기 자리 잡고 싶다고 하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야

여순항쟁 때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야

무고한 양민들이 부역질도 안했는데

누군가 이 사람이 부역자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바로 부역자가 되어

즉결 처형되어서 시신마저 태워져서

암매장된 곳이라니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할 수 없어서 한꺼번에

봉분하고 형제처럼 지내라고 했다니

 

이승만 정권은 계엄을 선포하고는

제주43 진압 명령에 불복한 군인들은 물론

양민들까지 부역자로 잡아들여서

여기까지 끌고 와서 5명씩 묶어서 총살하고는

그 시신들을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기름을 붓고

자그마치 다섯 단이나 쌓아서 불태웠대

그 불이 사흘 넘게 타올랐고 냄새가

달포가 넘도록 코를 찔렀대

 

70년이나 지났으니 이젠

아픔도 슬픔도 비바람에 씻겨 갔다고 하겠지

그런데 그 상처들, 비석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

아직까지도 가족들은 이름자도 비문도 꽁꽁 숨기고 살았다니

혹시 모를 연좌제를 걱정해서 말이야

저기 차들만 씽씽 달리고 있고만

 

 

                          *최기종 시집만나자(문학들,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