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제주시조' 제33호의 시조(4)와 겨울 한라산

김창집1 2024. 12. 17. 00:03

 

 

공명共鳴 - 권영오

 

 

선릉역 5번 출구에

 

다리 없는 남자가 앉아 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못 본 척

 

지나치는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봄비 - 김대봉

 

 

시커먼 구름들이 머리 풀고 흐느끼면

무수한 별도 함께 쏟아지는 온 천지에

구슬 빛 주워 삼키는 목마름에 불꽃 튄다

 

어쩌면 저 검은 기체가 뽑아 흘린 피

눈물의 심곡으로 고운 맵시를 적시며

개구리 잠깰 눈 비벼 땅이 움틀 기척이리

 

산하가 온통 가슴 확 벌어질 정맥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별빛 모아 다듬이질

냇가에 귀 기울고 선 버들가지 용트림한다

 

 


 

갈매기 비행속도에는 외로움의 단위가 붙지 김연미

 

 

갈매기 비행속도에는 외로움의 단위가 붙지

거리두기 바위와 바위 그 점 이어보면

반비례 직선을 그으며 너의 실체가 보이지

 

겨울비 내리는 날엔 검은 고양이 소리를 내지

늘어진 감정처럼 잔물결 이는 바다

기꺼이 과녁이 되어 너를 불러들이지

 

상처의 깊이마다 저기압의 추를 달아

농도 다른 사랑으로 허물어지는 삼양바다

갈매기 날개를 접고 점이 되고 있었지

 

 


 

사즉생死卽生 - 김영기

 

 

죽어야 산다면서

투신한다, 쨍그랑!

 

어디서나 유효하다

장군의 그 정신은

 

죽어서 부룬디 가니

백만 명을 살린다

 

 


 

희망퇴직 김영란

 

 

오늘도 꿈을 꾸며

우린 서로 믿었었지

과지봉지 헛바람에

세상을 의심하며

희망에 스며들어간

절망을 보았지

 

별사탕의 희망이

쏟아져 내렸지만

모두가 등을 돌린 채

돌아보지 않았지

희망을

희망하는 게

죄가 되고

벌이 되었지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4호(통권 33)에서

                                                        *사진 : 한라산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