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의 시(6)

김창집1 2024. 12. 18. 09:22

 

가을맞이

 

 

어제 같았던 풍경이 한소끔 달라졌다

가만히 둘러보니

가을이었다

 

골목을 정리하고 쓸다가

담벼락에 앉아

볕을 쬐는 노인들

 

지난여름 볕에

잘 마른 부드러운 바람이

앞머리를 넘겨준다

 

하늘도 억새도 바라볼 새 없이

가을,

바깥으로 퍼진다

 

 


 

종이비행기

 

 

종이를 접어 그 눈부신 하늘로 쏘아 올렸던 때가 있었다

꿈을 접어 함께 그 파란 하늘로 날렸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리기 위해 나무에도 오르고

울담과 오름에도 오르던, 내 유년의 가슴

 

한참 시간이 지났다

 

다시 종이를 접어 그 찬란한 광야로 날리게 되었다

꿈을 접어 함께 그 넓은 광장으로 날렸다

더 먼 곳에 도달하기 위해 있는 힘껏 내던졌고

종이의 질도 걱정하던, 내 젊음의 머리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내 꿈과 함께 높게만, 멀리만 보내자고 했던

그 종이비행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땅에 박히고 꼬꾸라지고 나뒹굴었음을 안, 내 육순의 다리

참 오래도 걸렸다

 

 


 

바람에 날리는 추억

 

 

기억 속을 거슬러 올라가면

추억 속의 네가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

무작정 길을 나서네

 

기억 속 선택한 삶의 길과

추억 속 버려진 꿈의 길 위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보네

 

기억 속 꿈을 그리던 일이

추억 속 꿈이 되어버린

차마 잊히지 못한 날들을 마주 하네

 

기억 속의 날들은 얼굴만 내밀고

추억의 몸통은 나선 길 위 벌레 먹은 낙엽이 되어

하염없이 바람에 날리네

 

 


 

할망과개미

 

 

을생(乙生)이 할망은

오늘도 그렇다’ - 어김없이

감귤밭 나무 밑에 있었다

 

나무 아래 달린 것들만

그 굽은 손이 닿는다

 

-악 잡은 손에서 과물 하나가 거칠게 떨어진다

마천루처럼 뻗어 있는

개미굴 위에,

 

잠시

아마도 잠시

그들은 서로를 응시했으리라, 그 뿐

 

다시

할망은 나무로, 개미들은 흙덩이로 굽은 허리를 움직인다

 

그들은 계획이 없다

그들은 내일을 예측할 수도 없다

오늘 내가 할 일만 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준 일을 한다

 

단지,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할망은 밀감 하나를 또 따서 담고

개미는 흙덩이들을 또 굴려 쌓는다

 

 

 

 

2

 

 

구름을 뚫고 내려오지 못해

안달이 난

별을 찾아

밤마다 밤마다 바다는 흐르고

 

밖으로 나온 별은

몸에 와 닿는

바다 바람이 서러워

바다로 떨어지고 마네

 

그믐달 밑에서 나는

흐르는 바다에 익사한

별빛 이나마 주워 담으려 하네

 

 

            *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월간문학편집부,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