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문학' 2024년 제15호의 시(5)
♧ 붕어빵 II – 안종관
눈발이 휘날리는 어느 날
길모퉁이 빈터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늙수그레한 붕어빵 장수를 본다.
비린내 안 나는 붕어빵 주세요
월매치나 드릴까유!
한 봉지 사서
책가방 사이에 넣고
걸어가며 먹으며
시장기를 달랜다
팔순의 고개를 넘은 친구들도
붕어빵 장수를 만나면
발길이 그곳으로 이끌려
한 개씩 입에 물고
어린 시절 추억 속에 잠겨본다
♧ 도두봉 나무터널 – 양대영
바닷바람을 등에 지고
탯줄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야트막한 오름을 오르고 있다
오름마다 다 있다는 화구는 없어도
정상에 서면 섬의 대문처럼
한눈에 파노라마로 꽉 차오르는 생명의 풍경들
자주 오는 길이었지만
뒷목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니
서쪽에 나무터널이 새로 생겼고 줄 선 사람들
자기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사진 찍는 장소로 유명세를 탔던 것일까
유심히 들여다보니 사랑의 집 같다
가족 혹은 연인들끼리 한 장의 추억을 남기려는
황홀한 순간들
나무터널 속 저편에서는
노을과 출렁이는 바다가 한 몸이 되어 가는데,
홀로 서 있던 무인등대
질투하듯 더 빨개지고 있다
♧ 지들당토막 – 양동림
곱닥허게 타들어강
히영한 불치가 되영
이디레착 저디레착
뿌려주문
나 또시 나달문 당덜 키워낼거라
정지서 식구덜 배부르게 멕일 밥허명
타들어가거나
굴묵에 들어강 아이덜 등 뜻 哭허게
타들어가거나
캠핑장이옌 헌디서
ᄉᆞ랑허는 사름덜 노래소리 들으명
그리운 ᄉᆞ랑 태우는 것추룩
화륵화륵 타올르는
ᄉᆞ랑의 장작불로 타볼거나
이녁신디 이신거 먼짝 태웡 곱닥헌 ᄆᆞ심만 냉기고
울음은 하늘디레 ᄂᆞᆯ리곡
히영헌 불치로 이 시상 걸음이 되는
지들낭토막
♧ 검은 꽃 – 양상민
사노라면 억울한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참다 참다 더는 못 견딜 때가
어디 한두 번인가
남몰래 짐승처럼 울부짖은 일이
어디 한두 번 뿐인가
믿음을 철저히 배신한 놈
날가슴에 녹슨 송곳 박은 놈
심장에 피가 고여 썩은 응어리를
다 토해 버리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부풀어 터지려는 속모를
내 가슴의 활화산活火山아
타다 남은 후회는 검은 꽃이어라.
♧ 아라한*arahan - 양태영
마음을 줄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곳
마음 밭에 정착하여
깨달아 마음이 평화롭고 자유롭다면
아라한의 불국정토 아니더냐!
달은 밝아 고요하고
구름은 흩어지니
사방이 다 문이로구나!
변한다는 것은 고통이 씨앗이거늘
한 세상 마음 비워 청정하니
마음밭 터전 일군 곳
여기가 아라한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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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arahan) : 완전한 행복
*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 2024(제3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