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4년 제15호의 시(5)

김창집1 2024. 12. 19. 00:02

 

 

붕어빵 II 안종관

 

 

눈발이 휘날리는 어느 날

길모퉁이 빈터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늙수그레한 붕어빵 장수를 본다.

 

비린내 안 나는 붕어빵 주세요

월매치나 드릴까유!

 

한 봉지 사서

책가방 사이에 넣고

걸어가며 먹으며

시장기를 달랜다

 

팔순의 고개를 넘은 친구들도

붕어빵 장수를 만나면

발길이 그곳으로 이끌려

한 개씩 입에 물고

어린 시절 추억 속에 잠겨본다

 

 


 

도두봉 나무터널 양대영

 

 

바닷바람을 등에 지고

탯줄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야트막한 오름을 오르고 있다

 

오름마다 다 있다는 화구는 없어도

정상에 서면 섬의 대문처럼

한눈에 파노라마로 꽉 차오르는 생명의 풍경들

 

자주 오는 길이었지만

뒷목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니

서쪽에 나무터널이 새로 생겼고 줄 선 사람들

자기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사진 찍는 장소로 유명세를 탔던 것일까

 

유심히 들여다보니 사랑의 집 같다

가족 혹은 연인들끼리 한 장의 추억을 남기려는

황홀한 순간들

 

나무터널 속 저편에서는

노을과 출렁이는 바다가 한 몸이 되어 가는데,

홀로 서 있던 무인등대

질투하듯 더 빨개지고 있다

 

 


 

지들당토막 양동림

 

 

곱닥허게 타들어강

히영한 불치가 되영

이디레착 저디레착

뿌려주문

나 또시 나달문 당덜 키워낼거라

 

정지서 식구덜 배부르게 멕일 밥허명

타들어가거나

굴묵에 들어강 아이덜 등 뜻 허게

타들어가거나

캠핑장이옌 헌디서

ᄉᆞ랑허는 사름덜 노래소리 들으명

그리운 ᄉᆞ랑 태우는 것추룩

화륵화륵 타올르는

ᄉᆞ랑의 장작불로 타볼거나

이녁신디 이신거 먼짝 태웡 곱닥헌 ᄆᆞ심만 냉기고

울음은 하늘디레 ᄂᆞᆯ리곡

히영헌 불치로 이 시상 걸음이 되는

지들낭토막

 

 

 

 

검은 꽃 양상민

 

 

사노라면 억울한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참다 참다 더는 못 견딜 때가

어디 한두 번인가

남몰래 짐승처럼 울부짖은 일이

어디 한두 번 뿐인가

믿음을 철저히 배신한 놈

날가슴에 녹슨 송곳 박은 놈

심장에 피가 고여 썩은 응어리를

다 토해 버리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부풀어 터지려는 속모를

내 가슴의 활화산活火山

타다 남은 후회는 검은 꽃이어라.

 

 


 

아라한*arahan - 양태영

 

 

마음을 줄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

그곳이 어디이더냐!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곳

마음 밭에 정착하여

깨달아 마음이 평화롭고 자유롭다면

아라한의 불국정토 아니더냐!

달은 밝아 고요하고

구름은 흩어지니

사방이 다 문이로구나!

변한다는 것은 고통이 씨앗이거늘

한 세상 마음 비워 청정하니

마음밭 터전 일군 곳

여기가 아라한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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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한(arahan) : 완전한 행복

 

 

                       *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2024(3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