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돌과바람문학 '2024 가을호의 시(3)

김창집1 2024. 12. 21. 00:38

 

 

목백일홍 지는 날 - 김현신

 

 

한 번도 거스르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시절이 와도

단 한 번의 갈등도 없이

소나기의 발길마저 받아 안았다

석 달 열흘 몸을 푸는 산통

 

화무십일홍

조각난 백일 아스팔트 위에 눕고

문명의 대가로 얻어낸 태양의 편치

붉은 운율과 허무의 허공

죽은 자들의 단념을 피워넀다

 

혼잣말이 비껴가는 테두리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중력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어머니 대신 보이는 것은 가로수

유년의 늪엔 출구가 없다

 

 

 


 

굴렁쇠 김정민

 

 

넘어지고 있다

나도 같이 넘어져 갔다

중심이 잡히면서 위기를 넘겼다

 

도전하련다

다시 넘어지지 않으려고

 

이제 가속을 잠시 멈추고

굴렁쇠 속도에 맡기고 싶다

 

그리고

멈출 곳을 찾고 싶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가

 

 


 

아침바다 백영옥

 

 

고요마저 물에 빠져버린 시간

밀려오는 그리움도

파도의 울부짖음도

징징대던 우울한 바람소리도

그토록 새파랗던 물결도

콘크리트 바닥처럼

회색빛으로만 가득찬

조금의 동요도 없이

침묵하는 바다

침묵마저 삼켜버린 시간

 

가슴을 열어제끼고

갈빗대가 드러나도록

속살까지 다 보여주며

더 밀어 낼 아무것도 없이

가식이라곤 보이지 않는

티 없이 말간 텅빈 바다

그날의 바다

 

 


 

침묵과 시간 오문자

 

 

가장 귀한 것

빛나는 것

 

서로를 알 수 없는

가장 힘이 센 감정

 

너무 단단하게

멈춘다.

언제나

 

침묵이 금이 된다

순간에

화상의 흉터처럼

목숨만 건진

다행을 길게 늘려본다,

 

시간은 금이 된다

너무 빠른 시간들

스쳐가는 통증처럼

더 이상 마주치지 않는다

 

모든 시간과 침묵은

주인이 없다.

 

금은 혼자다.

 

 


 

뒤돌아선 당신 - 윤정희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모두가 최고 존엄을 향해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할 때

꼿꼿한 고개로 마주하는 당신

뜨거운 그 강한 빛을

오롯이 이겨내는 당신

 

당신의 의지에 응원을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은혜의 빛을 받아

뒤통수마저 빛이 날 때

뒤돌아선 당신은

번뇌도 고뇌도 다 이겨낸 표정

 

당신의 미래에 희망을

모두가 나란히 줄을 서

목이 베어지기를 기다릴 때

노란 꽃잎 떨구지 않은 당신

푸른 줄기 잃지 않은 당신

이루고 싶은 그게 뭐든 잃지 말아요.

 

 

        * 돌과바람문학회 간 돌과 바람 문학2024 가을호(통권 제1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