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6)
♧ 성주사람
내 집에
저런 먹구름 들이지 마라
내 가슴에
유기질 단내 나는 내 가슴에
저런 두려운 것 심지 마라
내 곧은 눈
화톳불 이글거리는 두 눈에
저런 고약한 사술 피우지 마라
내 가는 길
닿는 대로 평화이고 푸르던 내 길에
저런 철조망 치지 마라
내 기침 소리
벌겋게 각혈하는 내 기침 소리
저런 불구덩이 외세는 아웃
♧ 죽비
이런 소개당헐 놈이시랭
4․3이 국가기넘일 되었다고랭
이제 정갱이 뻗고 지내램시냐고
아직 이름 석 자도 찾지 못함시러
세월랭 네월랭 풍월이나 읊으랭시나
등글멍 봉개동 거친 자락에 꽃핀댕시나
거새기 명분을 바로 세워야 할 거 아니가
느 속엔 해원의 영개소리 아니 들렴시나
눈감고 입 닫고 죽어지랭 74년이라
저기 봇물 터지는 응원이 아니 들렴시나
느야말로 섬사름의 장두였지 탄압허면 불끈한댕
이 나라가 반 토막 남아서랭 아니 된댕
저들이야 무장 폭도랭 남로당이랭 햄시카
그게 걸린다고 차선이나 찾을 거시냐
명명백백 정명허지 못하멍 허당이랭
해방 적엔 좌익도 우익도 합법이어시녜
이념이니 성격이니 그런 해명이 남아시냐
비폭력 평화주의자라도 되엄싱고라
위령허고 해원허고 화해허면 다 되엄싱고라
뭐 통일이 되는 그날에 헌다고랭
이런 조향할미 외면혈 놈이시랭
정명허지도 못함시랭 통일을 외울럼시냐
이질지질 끌다가는 뱅뒤앗 귀신되켜
치워라! 세우지 못하면 불끈허켜
♧ 단도론
신축년 이재수의 민란 때
봉서만 강봉현이 민포를 징수하고 심지어 집, 나무, 가축, 어장, 어망, 노위, 잡초에까지 세를 매기니
민군들의 행렬이 봇물처럼 대정에서 제주읍성까지
척사기 높이 들고서 세폐를 시정하라, 교폐를 시정하라고
제주 해녀항일운동 때
일제와 결탁한 어업 조합 측이 부당한 세금을 징수하고 전복, 해삼, 감태, 미역 등을 헐값에 인수하려고 허니
1천여 해녀들이 호미와 빗창을 들고 세화장에서 구좌면에서 제주읍성으로 만세를 외치면서
죽음으로 대응한다고 지정 판매제 반대한다고, 해녀조합비 면제하라고, 일본 상인들은 물러가라고
4․3 제주항쟁 때에
3․1절 기념식허고 총파업 투쟁에 돌입허고
미군정, 친일 봉건 세력, 서북청년단에 맞서서 탄압하면 항쟁헌다고
한라산 중허리마다 일제히 봉화가 타올라
5․10 단정 단선에 반대한다고 통일 정부 수립하라고 미제는 물러가라고
2017년 생명 평화의 날에
8월의 폭염 속에도 행진을 멈출 수 없다고
황색 것발 휘날리면서 평화야 고치글라 우리가 평화라고
강정 해군기지 진상규명하라고 제2공항 반대한다고 군사훈련 중지하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군함이 들어오고 군대가 들어오고 평화가 깨지고 난개발 자행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시퍼런 단도 하나 입에 물고 쳐들어가야 할 적진이 있었으니
몬딱 올라가야 할 오름이 바로 저기 있었으니
*최기종 시집 『만나자』 (문학들, 2024)에서
*사진 : 동백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