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제주시조' 2024 제34호의 시조(7)

김창집1 2025. 1. 13. 23:51

 

 

아버지 송두영

 

 

사람은 할 말 다하고

사는 게 아니여

깡마른 보리밭에

보릿대 움켜쥐며

고고리 손으로 비벼

보릿고개 넘긴 말

 

한 사발 탁배기로

얼큰하게 달군 여름

첫째 놈 둘째 놈

막내까지 불러들여

이놈들 아방이름 써보라

맨바닥에 흘린 말

 

망종 때를 그리며

걸어보는 보리밭길

그때는 경허명도

악착고치 살아신디

하지에 잔기침 흔적

청보리로 써 내린 말

 

 


 

날숨의 법칙 양상보

 

 

법전의 말씀대로 올라보는 산꼭대기

 

한 계단식 내 닫으며 어제를 지워낸다

 

허공에 맑은 울림이 메아리로 오기까지

 

가다가다 힘이 들 땐 날숨을 풀어본다

 

시작도 끝마저도 세상에 내놓는 일

 

마지막 곡기를 물리고 후유, 하고 내뱉던

 

 


 

절물 오영호

 

 

언제부턴가 개발이란 깃발 꽂고

산야든 목장이든 포크레인 머문 곳마다

흥건히 검붉은 피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끝내 음용 불가박힌 푯말 앞에

목마른 등산객이 말없이 돌아가고

노루도 머뭇거리다 줄행랑을 치고 마는

 

                                -절물부분

 

 


 

간혹, 로또 오은기

 

 

로또 일등 당첨으로 대박 난 복권방

밥 먹는 시간 빼곤 앉을 틈 없다는데

행운을 쫓는 사람들

그 틈에나 껴볼까

 

돈이면 염라대왕도 부릴 수 있다고?

초등학생 장래희망도 의사 판사 아닌 건물주

태생이 흙수저라면 먼 하늘 별이나 딸까

 

오보록한 토끼풀 그 망망을 헤집다가

별똥별처럼 스치는 문득 전화벨 소리

가까이 울 엄마에겐 어찌 보면 내가 로또

 

 


 

풍선 이정숙

 

 

북에서 보내 온 쓰레기 풍선

 

땜시

 

내 어린 날 풍선은 오염되고

 

스크래치나고

 

운동회, 가을 하늘가 무지개가 섰다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4, 통권제3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