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의 불빛을 탐하다
♧ 오로라 – 여울 김준기
오로라는 가득히 시야에 앉아 뜨겁다.
마음보다 더디어 보이는 발걸음은
돌아온 길을
촉감으로 만져두기 위함이 아니오
가슴으로 부신 빛살 어리인 길
찾음이리라
무명지 끝
팔딱이는 맥박 헤아림이리라.
그림자 한 올도 주워
매듭 이어감이리라
오로라까지
지금은 머-ㄴ 오로라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것은
주홍 빛살 싣고 내려올
한 자락 전설 기다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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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라 :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가 지구 대기로 진입하면서 공기분자와 반응하여 화려한 빛을 내는 신비한 현상. 북반구와 남반구의 극지방에서 흔히 나타난다.
♧ 빙하 - 오소후
물은 불의 심장을 지녔다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딜 때 얼음이 된다
그 얼음 켜켜이 쌓이고 쌓인다
그 견딜 수 없음이
오로라
불을 뿜는 불의 굴절에 휘황한 색채의 표현이다
사랑에 스펙드럼을 들이대면 저럴까
사랑 말이다
물불 가리지 않고 산다는 일
빙하의 얼음두께를 만들고
불길에 입은 화상은 영원히 남고
이제
무얼 태우고 무얼 녹여야할까
기후변화 생태가 느껴지는 나이를 껴안으며
♧ 관능의 여정 - 임영준
휘황한 오로라를 조심조심 벗겨내고
치렁치렁한 북국의 침엽수를 어루만지다가
깊고 푸른 호수에 풍덩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오뚝하고 고상한 산맥을 매만지면서
사시사철 감미로운 순풍이 감도는 옥답과 조우하고
해안을 타고 빛나는 포말의 격정을 끌어안고
저 광활한 초원이 품고 있는 육감에 응하여
혈맥을 차고 오르는 원시의 피톨까지 궐기했는데
곁붙어 전율하는 활화산 탓에 훌쩍 건너뛰었으나
저 길고도 곧게 뻗은 옥주玉柱의 각선에 빠져들어
몇날 며칠을 쓰다듬고 파고들고 부벼대다보니
마침내 태초의 밀림에 당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도 진솔하게 달아오르고
미세한 손길에도 격랑에 휩쓸리는 최후의 보루답게
말초까지 짜내어 파정破精케하는 대륙의 매혹이여
관능을 흡족케 하는 내 시원始原의 여정이여
♧ 정말로 나는 따듯한 풍경이 되고 싶었네 - (宵火)고은영
새벽의 냉기 속에도
온화했던 불빛의 가로등
풍경으로 놓인 신비 속에
나는 가만히 잠이 들고 싶었네
고요와 평화를 맘껏 누리고 싶었네
사랑은 길을 잃고 온 밤을 헤매고
나는 우울한 노래를 들었네
모든 사람이 무심히 잠든 틈을 타서
끊임없이 내리던 눈보라
영혼을 가르던 뭉툭한 슬픔 들이
내리는 눈과 함께 흐느꼈네
자연과의 일체를 꿈꾸던 동공에
한없이 젖어들던 환상의 오로라
베토벤의 운명처럼 겨울은 리얼하게
나의 가슴을 후벼팠네
슬픔이 가득한 길 위에
허리가 휘도록 쌓이는 눈덩이를
나무들은 묵묵히 온몸으로 안았네
눈꽃들은 만발하고 절망의 어둠에도
나무들은 쌕쌕 숨을 쉬고 있었네
그 밤의 정점에서 울리던 고요한 종소리
그토록 목메던 사랑을 잃고 절실하게 나는
내 사랑의 성소를 회복하고 싶었네
찾을 수 없는 내 사랑을 위하여
정말로 나는 따듯한 풍경이 되고 싶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