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8)
♧ 터 – 이애자
방파제에 나앉아 바다를 바라보네
힘차게 경쾌하게 빠르게 간결하게
한 무리 남방큰돌고래 음표처럼 지나가네
오물락이 들어갔다 오물락이 나왔다
해녀도 오물락 돌고래도 오물락
저들도 젖먹이끼린 호흡이 맞나 보네
모슬포 앞바당에 남방큰돌고래 산다네
모슬포 앞바당에 텃바람이 산다네
그 바람 그 돌고래도 주파수는 통하나 보네
귀신풍차 모셔다 바람팔이 한다면
우왕좌왕 돌고래떼 소통장애 생긴다면
이 바당 혼디 나누명 느영나영 살까 몰라
♧ 입과 규범 – 이창선
배드민턴 세계제패 금메달 소식에
일어서 손벽 치며 환호하던 기쁨도
안세영
영종도 공항
로비서 기자대담
내 몸에 입은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근래에 입법기관 필리버스터 하고 있다
옛말에
칼로 안 잡앙
입으로 잡나 했다
♧ 어떤 비수 – 임태진
바람처럼 지나가다 가슴을 푹, 찌른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불러 죽겠다는 말
지구촌 어딘가에선
간절하고 간절한 말
때로는 뜬금없이 숨통을 파고든다
무심코 흘려보낸 농담 같은 그 말이
가난한 영혼들 심장에
예리하게 박힌다
♧ 공벌레와의 하루 – 장영춘
어리목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한
바위 밑 공벌레가 또르르 말린다
반나절 그 자리에서
붙박이가 된 아이
햇볕을 마주하지 못한 날이 길어질수록
눈이 부셔 세상을 마주하기 힘들어요
또르르 또 또그르르
말리고만 싶어져요
저 멀리 키이우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 날
방공호 지하에 갇혀 꼼짝달싹 못 한 채
한 소년 글썽이던 눈물
바람이고 별이었네
♧ 기후재난 앞에서 – 장한라
허울 좋은 명제를
가슴팍에 걸쳐놓고
운명이라 덧씌우는
외곽의 오만함
옥죄는
붉은 행진에
고난의 깃발 세우는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 2024 통권 제3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