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향문학' 2024 하반기호의 시(5)
♧ 못 – 강상돈
너와의 기억이 가슴 속에 깊이 박혀
온몸이 아프지만 빼낼 용기가 나지 않아
고독이 밀려오는 곳, 맞부딪쳐 엉켜있다
너의 웃음, 너의 눈빛, 종일 껴안은 작은 못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히 박히고
자꾸만 아리게 한다, 아픈 마음 휘어진다
잃어버린 꿈의 잔해 못이라는 그대 이름
나를 때리고 간 산만한 가을날에
오늘도 숨을 죽이며 짓눌린 채 살아간다
♧ 목어 2 – 김대봉
중생이 목탁을 치며 법문을 외시는데
목탁만 악기더냐
풍탁도 악기라며
타 악 탁
풍탁을 치며
풍경 읊는
물
고
기
♧ 포착하다 – 이창선
풀잎에 맺힌 이슬이 떨어질까 위태롭다
목숨 줄 연명하듯 간신히 버텨내며
단두대
걸린 시간이
길지마는 않았다
풀끝을 바라보니 나의 생도 위태롭다
앞만 보며 걸어온 길, 풀잎 끝에 매달려서
점점 더
마음의 무게가
커져만 가는 하루
♧ 애월涯月 - 곽은진
고요한 물가에 내려앉은 달
은빛 물결 속에서 조용히 춤을 추네.
밤하늘의 빛이 물 위에 스미듯
잔잔한 물속 깊이 달이 번지네
바람이 살짝 흔들어 놓은 물결
그 속에서 달빛은 일렁이며 흩어지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그 조각들은
마치 꿈결처럼 내 마음에 머무네
물가에 비친 달, 그 고요한 풍경 속에
시간은 멈추고 마음은 깊어지네
어둠을 밝혀주는 너의 부드러운 빛이
나의 밤을 조용히 감싸 안네
[문인초대석]
♧ 국수를 삶는 저녁 – 서숙희
촘촘한 체 같은 어스름이 번져 오고
사랑니 뽑혀 나간 동그란 아픔 위에
봄 저녁 물 끓는 소리 무심하게 고이는데
만지면 부서질까 당신의 마음가닥
가늘고 빳빳한 쓸쓸의 올올들이
뜨겁게 곤두박질치며 물속에서 몸을 푼다
참았던 시간들을 찬물로 행궈 내면
어쩜 몇 가닥쯤은 당신에게 가 닿아
반음 쯤 낮은 자리에서 흰 음계로 울어줄까
♧ 푸른바다 – 김정희
해가 수평선 너머로 떠나며
어둠에게 부탁했어
푸른 바다를 부탁해
어둠은
푸른바다를 숨겨주었어
하지만 깊고 깊어서
푸른바다는 다 숨겨지지 않았어
다음날 해가 돌아왔을 때
푸른바다는
숨비소리 내며 튀어 올랐지
휘파람새들이 파드닥 거리며 날아올랐지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 2024/하반기 제2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