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한라산문학' 2024 제37집의 시(4)

김창집1 2025. 2. 4. 00:10

 

 

세연정  –  현문길

    -보길도에서

 

 

정자에 비 내리면

 

푸른 옷소매

젖을까 스치는 미소

 

술잔에 고이는 아련한 눈길

몇 년을 보아도 떨릴 눈매

 

빨간 동백으로 피어

가슴 젖는 날

 

하안 물새 한 마리

파닥거리는 사랑 물고

연못 위 감돈다

 

 


 

보길도 연정 홍연서

 

 

꿈엔들 잊으리 비몽사몽 그리던 곳

20년 세월 돌아 어떨결에 찾아드니

반겨줄 님은 백골이 되었어도

연꽃 같은 세연정 감흥에 젖네

 

따듯한 찻잔 마주할 때

뱃고동 소리 울리며 떠나던 여객선

넋 잃고 굽어보며

저 배 타면 언제오나

육지땅은 밟지 않으리란 옹알이를 조아렸지

식어버린 한 잔의 커피를 두고였어

 

동대 서대에서 춤추던 무희들

청초하고 향긋한 꽃내음에

억겁의 세월 돌아 지금

윤회의 삶으로 가없이 사네

 

롤러코스트로 누비던 인생살이

구름 한 점 바람 한 자락 물고

안빈낙도의 삶 살았던 님 곁으로 돌아오니

초목이 등 토닥이네

 

 


 

때론 남편에게 미안하다 - 강윤심

 

 

오른쪽 목선으로부터

어깻죽지까지의 갑작스런 통증

돌아누워 일어날 수도 없다

그해 여름 새벽길

비보 실은 소낙비처럼 아프다

자정 넘어 서쪽 하늘 달무리

유리창에 걸려 있을 즈음 가게 문 닫는

칠순의 반백 머리카락을 한 남편은

아직도 깊은 잠결이다

한의원 가기 위해 겨우 거북목을 하고

나는 지난날들의 가족에 깊은

남편을 애처로이 깨우다

파스 물이 번지듯 싸아한 나의 목젖

 

 


 

당신은 촛불입니다 김대운

 

 

북극성 바라보며

어둠의 길 거닐어

복수초처럼 차가운 등

녹여낼 방바닥을 만들었습니다

 

연탄불에 고기 구워주며

귀동냥으로 인생을 배우고

힘들어하는 단골손님들

아껴두던 뒷고기로 촛불이 되었습니다

 

눈 내리는 창밖

검은 오토바이 윙윙거리는데

깊어가는 저녁

가지런히 놓인 식탁에서

앵커의 목소리를 들으며

덜덜 떨고 있습니다

 

연골 없는 무릎

우편함에 쌓이는 노란 종이들

직장 찾아 헤매는 자식들

하소연할 곳 없는 마음에

현기증이 머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당신은 등나무가 되었고

촛불이 되었습니다

 

 


 

먼물깍에 들다 김도경

 

 

하늘 먼 길 끝자락에서

내리사랑이 품는다

 

물에 잠긴 구름

한줌 뜬 손에서 떨어져 내리고

딸자식 눈에 밟힌 어머니

먼물깍* 반영에 들었다

 

그날, 폭발했던 화산은

가습 기저에 용암으로 굳었다

요철로 각인된 굴절에

비가 오면 눈물이 고였다

 

걸러내지 못하면

병이 된다고

품고 토닥이면

별거 아니라던 어머니

이랑이랑 머무는 먼물깍

네 고생까지 내가 사서 했다는

이젠 편안할 거라는 말씀

바람 타고 방사탑을 거닌다

 

어머니 손잡고 촐랑거리던

여섯 살배기로 따라 걷는

초로의 딸자식 앞에

햇살이 꽃점으로 내린다

 

숲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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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물깍 : 동백동산 곶자왈 속에 있는 습지.

 

 

              *한라산문학동인회 간 한라산, 보길도를 품다2024. 37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