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10)

김창집1 2025. 2. 8. 01:17

 

 

붉음에 대하여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길을 가다가 죽을 수 있는가

세상에 길을 가다가 죽을 수 있는가

차에 치인 것도 아닌데

땅이 꺼진 것도 아닌데

 

누구도 길을 가다가 죽을 수 있는가

아무도 길을 가다가 죽을 수 있는가

폭격을 맞은 것도 아닌데

독가스가 터진 것도 아닌데

 

도저히 길을 가다가 죽을 수는 없다

도무지 길을 가다가 죽을 수는 없다

길을 가다가 압사당할 수는 없다

길을 가다가 몰살당할 수는 없다

 

길을 가다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길을 가다가 그렇게 죽을 수는 없다

왜 죽었는지 설명이 없다

왜 죽었는지 이유가 없다

 

길을 가다가 죽은 것이 사고라고 한다

길을 가다가 죽은 것이 운명이라고 한다

어디에도 국가는 없었다

어디에도 책임자는 없었다

 

길을 가다가 죽은 사람들

아무래도 길을 가다가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

누구도

도저히

 

 


 

미안마를 위하여

 

 

! 미안마

그곳 남방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비명 소리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웅산 수치와 정부 요인들을 체포하고 구금했습니다

군부가 입법, 사법, 행정 전권을 찬탈하고

민 아웅 흘라잉을 국가행정위원장으로 세웠습니다

군부가 시위대를 향하여

마구 총을 쏴 댑니다

군부가 구급대원들을 사정없이

총칼로 내려치고 짓밟았습니다

군부가 시신들을 트럭에 싣고 어디로 갑니다

장례 중인 시신들도 탈취하고 도굴했습니다

 

, 미안마

민주주의는 지켜질 것인가

시민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냄비나 솥을 두드리며 불복종 운동에 나섰습니다

시민들이 세 손가락을 높이 들고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아웅산 수치를 석방하라고 합니다

시민들이 붉은 수의를 입고 누워

군부는 계엄령을 해제하라고 민 아웅 홀라인은 즉각 물러가라고 합니다

시민들이 총칼에 찔리면서도 끌려가면서도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고 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저항했습니다

시민들이 시위대를 향하여

코코넛을 건네고 대통 밥을 지어 날랐습니다

시민들이 전 세계를 향하여

미얀마는 군부를 거부한다고 함께하자고 구호를 타전합니다

 

, 광주

다 잘 될 거야

모든 게 잘 될 거야

Everything will be OK

우리는 당신들을 지지합니다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양을 치고 젖을 짜던 사람들

어느 때나 돌아갈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안쓰럽구나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서안에서 저항하는 사람들

어느 때나 자유일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먹먹하구나

 

시온의 배척인가

종족의 초토인가

네 이름만 불러도 비명이 도는구나

네 이름만 불러도 파괴가 뜨는구나

 

탱크에 돌을 던졌다고

수백의 팔다리 부러졌다고 하네

저 도시 박격포 쏘았다고

이 도시 폐허가 되었다고 하네

 

서 있는 것들 누우라고 하네

입 달린 것들 닥치라고 하네

뿔 달린 것들 뽑으라고 하네

집 없는 것들 떠나라고 하네

 

팔레스타인!

젖과 꿀을 소원하는 사람들

어느 때나 구원이 될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빵이 생기는구나

 

그렇게

깔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구나

무너져 내려도 다시 일어서는구나

어느 때나 어느 때나 용서가 될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겨자씨 돋아나는구나

 

 


 

가자지옥

 

 

팔레스타인들

그 살던 곳 빼앗기고

거기 지중해 연안까지 쫓겨왔다

군대가 나서서 이동을 감시한다고

분리 장벽을 치고 해안을 막아

최대 감옥을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백배천배 융단 폭격이라니

그 도시 박살나고 민간인 수만이 죽었다

난민촌도 병원도 유엔학교도 구호 트럭도

아이도 여성도 표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건 분쟁이 아니라 씨를 말리겠다는 것이다

 

폭격기가 날아왔어요 미사일도 날아왔어요 사방에서 건물들이 푹푹 쓰러졌어요 흙먼지가 자욱했어요 시도 때도 없는 폭격이에요 하마스를 제거한다고 아파트고 주택이고 병원이고 가리지 않아요 한꺼번에 수십 명이 죽어나가요 전기도 수도도 전화도 끊겼어요 더 이상 먹거리가 없어요 유엔도 구호소도 끊겼어요 이러다가 맞아 죽고 굶어 죽을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그 살던 곳 다시 떠나라고 한다

가자에 이럴 수는 없다

그들은 뽑혀야 할 잡초가 아니다

그들은 버려야 할 우상이 아니다

47, 55번으로 가라는데 어딘지 모른다

시온주의자들은

그들의 시온만을 신봉한다

그들만의 공존을 맹신한다

그 살던 곳 내몰아서 어디로 가라는지

신은 어디에 있는지

신은 누구를 벌하는지

 

 

                           * 최기종 시집 만나자(문학들, 2024)에서